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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포럼]친일, 친독재 활동과 작가, 작품의 관계
전점석(창원 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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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4  15: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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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먼저 좋아하다가 나중에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작가가 아름다운 삶을 산 것을 알고 기뻤을 때도 있고 나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어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에 어떤 분들은 뗄 내야 뗄 수 없는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해 굳이 작품은 별개라는 변명을 내세워 <작품을 좋아하는 자신>을 변호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오페라 작곡가인 바그너의 음악이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었다. 왜냐하면 유태인을 핍박했던 히틀러가 바그너의 열렬한 추종자였기 때문이다. 나치시대에 수용소에 잡혀온 유태인들은 매일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스피커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바그너의 음악을 지겹도록 들어야했다.

물론 바그너는 자신이 죽은 지 40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음악이 나치즘에 의해 전대미문의 학살극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유태인을 배격하는 2권의 책을 집필하여 명실공히 반유태주의 신봉자임을 과시했었다. 바그너 축제극장이 있는 독일의 바이로이트에서는 지금도 바그너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나치 수용소에 갇혀서 매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던 유태인에게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 바그너의 음악을 같이 듣자고 하는 건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이 분들은 직접적인 자기 경험 때문에 도저히 작품과 작가를 별개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마치 조두남의 친일과 이은상의 친독재 행위가 생계형이 아니어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똑같다. 많은 친일, 친독재 작가들 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을 수도 있고 마지못해 소극적으로 친독재를 했을 수도 있다. 작품까지 무조건 싫어할 일은 아니다.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진심으로 사과를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작품을 보면 대번에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이은상의 <가고파>를 좋아했다. 학교 선생님의 영향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그분들이 독재자를 찬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작품은 별개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직접 작품을 읽고서는 너무나 심각하여 작가에게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당 서정주는 1944년에 매일신보에 발표한 시 <마쓰이 伍長, 송가>에서 가미가제 특별공격 대원을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몸으로 내려쳐서 깨뜨리는 영웅이라고 하였다. 특공대원은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난 인씨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조선청년인데 ‘장하도다 /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라고 찬양하였다.

노산 이은상은 제2의 쿠데타로 불리우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을 하다가 궁정동 안가에서 자기 부하가 쏜 총탄에 맞아 죽은 박정희 대통령의 비문을 썼다. 이 비문은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에 의해 조가(弔歌)로 작곡되었다. 노산은 ‘태산이 무너진 듯 강물이 갈라진 듯 / 이 충격 이 비통 어디다 비기리까 / 이 가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어도 / 가지마다 황금열매 주렁주렁 열렸소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민족의 영도자, 역사의 중흥자라고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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