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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98) 벽송사를 찾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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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4  16: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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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버거워도 훨훨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은 함께하는 가족이 있고 지켜보는 지인과 이웃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책임의 무게만큼이나 자기완성의 삶의 가치에 대한 사명을 의무로 인식하지 않으면 인류공동체가 와해되며 본인 파멸이 앞서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복되는 일상의 고단함은 자기성찰로 다스리며 내일을 위한 오늘의 자세가 긴요한 여력으로 재생산되게 심신을 다듬으려고 가끔씩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일정에 따라 멀고 가까움이 있을 뿐 일상의 고단함과 번민을 털어내고 또 다른 세상과의 새로운 만남이라서 어디면 어떻고 언제면 어떤가가 문제되지 않는다. 숙박을 요하는 먼 길이 아니라면 홀가분한 차림새에 단출한 여장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유난스레 요란을 떨면 예상 밖의 탈이 나고 소문내고 날 잡으면 없던 일도 생기니까 마음에 짚이는 곳이 있으면 아침상 물리고 나서고 볼일이다.


 

   
벽송사 전경.


가을의 정취에 사색을 녹이며 비경의 풍광 속에 홀로 객이 되어 애환의 역사가 굽이굽이 서려있는 엄천강 굽이진 길을 따라 벽송사를 향해 길머리를 잡았다.

35번 고속도로 생초 요금소를 나와 ‘곱내들’을 벗어나 산모롱이를 돌면 기암괴석으로 가파르게 비탈진 선바위산기슭을 따라 굽이져서 이어지는 도로 아래로 물빛 푸른 엄천강이 그림 같은 풍광이다. 예사로운 풍광이 아닌 줄은 알면서도 언제나 힐끔 보고 지났던 길이라서 모롱이 날머리에 차를 세웠다. 벼랑 끝에 늘어선 느티나무와 도토리나무는 노령의 거목으로 크고 작은 옹이가 울퉁불퉁 불거져서 세월의 무게가 역력하건만 곱디고운 단풍으로 영롱하게 물들었다. 벼랑 높은 산중턱엔 없는 듯이 내려앉은 빛바랜 정자는 잿빛으로 정겨운데 엄천강 푸른 물에 그물을 걷고 있는 어부는 쪽배를 저으며 아른아른 제 모습을 그림자로 드리운다. 괜스런 객군이 선경 같은 그림위에 흠집 될까 염려되어 가던 길로 차를 몰아 화계장터의 엄천교를 건너서서 강을 따라 이어지는 마천 길로 들어섰다. 지리산 준봉들은 단풍으로 물들었고 자드락의 마을에는 붉게 익은 감들이 가을볕을 붙잡고 가지 끝에 매달렸다.

굽이져 흐르는 강을 따라 동호마을 들머리의 점필재 김종직 선생께서 함양군수재임시에 조성한 관영차밭을 지나 한남마을 들머리에 닿자 느티나무 숲속에서 ‘나박정’ 정자가 쉬어가라 붙잡는다. 세조의 왕위 찬탈로 생모인 혜빈 양씨와 동기들마저 참화로 잃고 한남마을 건너편 새우섬으로 유폐되어 한 많은 생을 마친 ‘전주이씨 세종왕자 한남군 충혼비’가 단풍잎 흩날리는 동구 밖 숲속에 처량히도 홀로섰다. 귀하디귀한 왕자의 몸으로 천리 길 머나먼 유배지에서 이승을 하직하고 함양 땅 상림의 산자락에 백골로 묻혔으니 설움인들 오죽하고 원한인들 오죽하랴. 역천과 질곡으로 얼룩진 역사는 ‘한남’이라는 마을 이름 두 글자만 남겨놓고 무심한 세월 속에 속절없이 잊어가도 성황당 돌탑은 원한서린 옛 세월을 오롯이 품은 채로 말없이 숙연하다.

오백여년 세월은 고산준봉 끝자락이 새우섬마저 토사로 밀어붙여 자드락으로 삼았으니 강산도 약자를 침탈하는데 인간사야 오죽하랴.

새우섬 휘감아 도는 강을 거슬러 모롱이를 돌아 와룡대를 지나니까 물레방아 돌아가는 백련마을 들머리에 집채 같은 바위군의 ‘화연대’ 아래에는 마을의 내력이 적힌 빗돌과 시를 새긴 시비가 마주보고 정이 겹다. 이조년의 형인 이백년과 이억년이 은거하며 마을을 이룬 형제의 인연으로 시비를 세웠다는데 언제 읊어도 가슴을 저리게 하여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게 하는 이조년선생의 ‘다정가’가 새겨졌다.

굽이진 산모롱이를 돌자 강은 더욱 깊게 내려앉아 벼랑은 아찔한데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작은 집들이 층층이 자리를 잡은 ‘고정마을’은 푯돌에 새긴 ‘높은징이’라는 옛 이름이 오히려 다정하다. 왼편의 아래로는 소나무와 도토리나무가 빼곡하여 벼랑의 끝은 보이지 않으나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물은 까마득한 깊이로 내려앉았고 오른 쪽의 산기슭으로 작은 골짜기 마다 우람한 바윗돌이 작은 계곡을 이루고 있어 한 모롱이를 돌면 ‘동우대’이고 또 한 굽이를 돌면‘ 동신대’가 있고 이어서 ‘첨모암’이 있어 바윗돌의 비경들이 골골이 이어진다.

송정마을과 마적대로 건너가는 용류교를 지나서 널따란 계곡 아래에 ‘용담입문’과 ‘구룡대’라 음각된 바윗돌이 가로누운 용유담으로 내려섰다. 기암괴석은 천지창조자의 작품이라지만 거암거석을 갈고 다듬은 장엄한 조각들은 누구의 소작인가, 신이 빚은 작품인가! 아홉의 용이 노닐며 똬리를 틀었는지 항아리 같은 구덩이와 배밀이를 하고 간 흔적의 고랑이 비단결보다 매끄러워 아직도 온기가 남은 것 같은데 회돌이 하는 거센 물길의 소는 깊이를 알 수 없다. 그 옛날 김종직 선생이 선물로 받았다는 뱀사골 달궁의 돝못에서 내려와 용류담에 산다는 ‘가사어’가 다시 왔나싶어서 목을 빼고 들여다보니 소용돌이 속으로 하늘이 내려앉아 흰 구름이 빙빙 돌고 오색단풍 영롱한 산도 따라서 빙빙 돈다.

여기서 불끈 저기서 불끈 육중한 바윗돌이 사방에서 옹호하여 가까스로 어지럼증을 떨치고 가던 길을 재촉하여 의탄교를 건너서 추성계곡으로 들어섰다.

‘벼랑마다 기암괴석 온갖 형상 기묘한데/ 굽이굽이 계곡마다 옥수청담 별천지라/ 떠가는 흰 구름마저 가던 길을 멈추네.’

고산준봉 골골이 오색단풍 영롱하고 자연조화의 절묘한 풍경 속으로 빨려들듯이 비탈진 산길을 굽이돌아 벽송사 주차장에 닿았다.

 

   
벽송사 목장승.


속계와 법계의 가름을 없애려 함이던가.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다. 악귀는 범접을 말고 속인은 삿된 생각을 버리라며 위풍당당하게 섰던 호법대신과 금호장군의 목장승도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서 퇴역을 하고 이제는 비 가림의 보호각 안에 안치되어 나란하게 섰는데 금호는 어쩌다가 눈도 코도 잃었으며 둘은 하나같이 깊이 파인 주름살만 빈틈없이 남겼을까.

범종각을 돌아들어 뜰 안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선방이고 애래 위도 선방인데 뒤편으로 자그마한 원통전과 산신각만 단청이 고울 뿐 거무스레한 목조건물들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자 중후한 멋을 낸다. 노송의 거목인 도인송과 미인송이 나란히 굽어보는 둔덕위로 층층계단을 오르니 그 옛날의 대웅전이 있었다는 또 하나의 널따란 마당 한 자락에 옛 내음이 물씬 나는 삼층석탑이 단아한 기품과 수려한 자태로 애환서린 옛 세월을 말없이 지켜오며 고고하게 홀로섰다. 보물 제474호이다. 벽송대사의 창건으로 부용, 청허, 부휴, 송운, 청매, 서룡 등 기라성 같은 정통 조사를 포함하여 108고승대덕들의 수행처로 조선불교 최고의 종가인 벽송사는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이라고 불리어진다.

유장한 세월 속에 심산법계 벽송사는 외란과 질곡의 역사로 성쇠를 거듭하면서도 중생들의 성불인연을 오늘로 이어 오건만 반목으로 얼룩진 산문 밖의 세속을 서산은 뭐라시며 사명당은 뭐라고 하실까. 건너다보이는 칠선계곡의 단풍은 불을 뿜는 듯 붉게 탄다.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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