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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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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6  03: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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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2)

그 사이 용재는 눈 부릅뜨고 어른에게 대들면서 사과하라고 다그친 깐으로는 사뭇 부드러운 얼굴로 트잡이꾼 모습인 제 동생을 데리고 논의 물고로 내려가 얼굴을 씻기고 흙 묻은 옷차림도 대강 정리를 해준다. 비어있는 소쿠리와 낫을 확인하더니 어른처럼 나무라기도 한다.

“캐 오라 카는 쇠꼴은 안 베고 뭐 하러 여까정 나왔노.”

“오빠 오는가 싶어서 나왔다 아이가.”

계집애는 무한한 사랑과 신뢰가 실린 얼굴로 앉아서 제 옷섶을 털어주는 오라비에게 저를 맡기고 있다. 수세미가 된 머리카락까지 대강 손가락으로 빗긴 뒤 용재는 제 동생을 양지 앞으로 데려다 세웠다.

“이모한테 인사 디리라. 야가 지 막내 동생임더 이름은 경미고 올해 초등학교 일학년 임더.”

제 오빠의 소개를 받은 계집애가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러나 양지는 인사를 받기보다 ‘막내 동생’이라는, 말에 머릿속이 띵해졌다. 용남이는 날 때부터 제 구실을 못하는 중증장애인이었고, 지금 또한 장기이식을 해야 되는 환자 아닌가. 용재 밑으로 위로 몇 명이나 더 있느냐고 묻고 싶은데 정답게 반질거리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면서 경미가 손을 잡는 바람에 생각이 접혀버렸다.

양지는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이 뒤엉킨 속마음을 어떻게 가리사니 잡아야할지 사뭇 신경이 쓰였다.

사람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쾌적한 공간에 대한 상식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곳이다. 필요한 생활집기와 정서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온갖 장치들에 대한 상식도 무시한 구조와 복닥거림을 지금 눈으로 보고 있다. 어설프게 덧대고 수리한 흔적을 상이용사의 상처처럼 여기저기 드러내고 있는 오래 된 집. 농기구며 가정 집기들이 쓰다가 손쉽게 던져 둔 채로 놓여 있는가하면 입다 벗어 둔 외출복이나 땀 배인 빨랫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눈에 걸렸다. 게다가 개밥그릇에 잔뜩 붙은 새까만 파리는 순간적으로 와르르 날아올라 시야를 어지럽히고 머잖은 두엄간과 돼지막에 풍겨오는 썩은 냄새는 저도 몰래 코를 막게 만든다. 고령의 조부모와 장애인 부모, 얼마 안 있으면 막차를 타고 들어오게 돼있는 시내에 살고 있는 세 딸 중의 하나, 그 아이가 오면 한 곳에 모이는 식구가 자그마치 열 명 가까이 된다. 양지는 언뜻 복대기면 살았던 40년 전 자신의 곤핍했던 시절을 상기했다. 넉넉지 못한 환경으로 인해 분배에 골몰해야 되는 어른도 어른이지만 아이들이, 풍요가 넘치는 요즘 세상을 살아야하는 어린 아이들이 겪어야할 정신적인 궁핍을 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힘겨운 노역으로 손주가 많은 이 집안을 이끌어 나가는 어른들의 무모한 가족계획에 무릇 역겨움이 일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동선이 어지러운 가족들의 그 많은 움직임 가운데서도 예상했던 뒤엉킴이나 볼멘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부엌일을 하거나 가축을 돌보는 일, 들에서 논밭 일을 하는 것 등 제각각의 소임대로 움직이는 익숙한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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