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5)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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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5)

“에미가 지 몸은 저래도 치종을 잘했는데 우리 양주가 부실해서 그만…….”

양지는 자꾸 제 상식으로는 감 잡을 수 없는 이 집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넓은 도량에 고개가 갸웃해졌다. 보고 듣는 그들의 면면 모두 기이해 보인다.

어쩌다 보니 저녁때였다. 면사무소 앞에 막차가 들어오면 교통은 두절되고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되는 곳이다. 교통이 아직 이렇게 불편한 곳인 줄 알았다면 목장에 있는 작은 트럭이라도 가지고 왔어야했다. 양지가 바장이는 기색을 본 용재할머니가 정색으로 손을 홰홰 저었다.

“모처럼 오ㅤㅅㅣㅆ는데 침수는 불편해도 하룻밤 유하시고 가시야지 그리 괴한 말씸이 어딨십니껴, 이모 오ㅤㅅㅣㅆ다꼬 좋다삿는 우리 아아들은 또 서운해서 우짜고요. 아아들은 또 아아들이지만 그냥 가시고 나면 우리 양주도 면이 안섭니더.”

마음이 편한 쪽만 따지면 큰길에 나가 택시라도 불러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격을 두고 무시하는 듯한 오해라도 살까봐 주인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양지는 주저앉았다.

안식을 위한 귀소 준비로 이 곳 저 곳의 소란스러움이 이웃집 솥뚜껑 여닫는 소리까지 뒤섞여 날개를 달고 일어서는 저녁때. 어스름이 내리자 경미는 양지를 보고 슬쩍슬쩍 웃으면서 마당가에다 모깃불을 놓고, 사장어른은 귀한 손님에게 대접할 반찬거리가 없다며 이웃에 가서 계란을 사오는가 하면 텃밭에서 가지와 애호박을 따오더니 겉절이용 열무를 씻고 양념할 초피와 마늘, 붉은 고추를 확에다 달달 갈아댄다. 사장어른의 일손을 거들며 양지는 옛날에 그러했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렸다. 여느 농가에서나 있을 법한 풍경이건만 양지는 기형적인 이 집안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 애연스러운 가족들을 절망과 불안으로 고통 받게 하는 뜻밖의 일은 참으로 평화스럽고 고즈넉하게 잠겨오던 저녁 이내를 들쑤시며 정체를 드러냈다.

“할매, 할아부지 큰일낫심더!”

강변에 매 놓은 소를 몰러 나간 용재의 동생 경옥이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면서 뛰어 들었다. 그때까지 작은 소음을 눌렀던 밤매미 소리와 모깃불에 ㅤㅉㅗㅈ긴 나방의 어지러운 활공이 작정한 듯 일시에 우 몰려들어 조임매를 잘라 던졌다. 그악스런 매미소리 때문에 양지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노인은 손녀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아이고 저놈으 가스나 또 호들갑 나온다. 와 또 누구 집 강생이가 씨암탉이라도 물어 쥑있더나?”

별식으로 부침개용 애호박을 썰고 있던 용재 할머니가 뜀뛰기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경옥을 흘겨보며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되받았다.

“아이다. 그게 아이다. 참말로 유, 유월이가 없어졌단 말이라!”

그제야 장난으로 여기던 할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이 자세를 흩뜨리면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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