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6)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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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6)

“강변에, 물방아실 옆 둥구나무 밑이라 안 카더나. 잘 찾아봤나?”

“그래, 둥구나무 밑에 없어서 강들 다리 밑이랑 싸릿골 다리 꺼정 소 매는 데는 다 찾아댕깃다 아이가.”

아이는 소가 사라진 것이 마치 자기가 잘못해서 저질러진 일 인양 오해 받을까봐 거의 울상이 된 채 땀 흘리면서 뛰어다닌 여러 정황을 설명하는 데 비해 할머니는 여전히 능갈치는 표정을 실은 채 딴청을 부린다. 아이의 속마음을 다 읽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아이가, 저눔으 딸내미가 또, 이 할미가 니 속을 모를 줄 알고.”

말을 하다말고 벌떡 일어난 안노인은 경옥을 꼼짝 못하게 꽉 끌어안더니 히히히 장난스러운 웃음을 만들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요놈으 자슥, 니 장난치는 거 모르는 사람 여서 너거 이모님 하나 빽기 없다. 유월이는 하마 저 담 모티이 골목을 돌아오고 있을 걸. 이모님, 잘 들어보이소. 우리 유월이 요령 소리가 하마 짤랑짤랑 들릴낀깨 내 말이 맞나 안 맞나 잘 들어보이소. 터벅터벅 집 찾아오는 발재죽 소리도 날낀데요.”

용재할머니는 들에서 일을 마치면 사람처럼 제 집 찾아서 잘 돌아오는 영리한 소라고 유월이 칭찬을 덧붙이면서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아무리 집중해서 청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지금쯤 소가 집으로 들어올 것이라 짐작되는 시간을 넘었지만 어떤 기척은커녕 살랑거리는 바람결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뒤이어서 저희 아버지를 모시러 간다던 용재가 들숨 날숨 없이 뛰어 들어왔다.

“옥아, 니 참말이가, 우리 유월이 없어졌다카능거?”

말과 동시에 외양간이 있는 아래채 모퉁이를 돌아갔다 이내 되돌아 나온 용재의 얼굴에 현실을 인정하는 수심이 드러났다. 그제야 소가 없어진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몹시 놀라는지 몰라도 그들의 표정은 늘 있는 일상의 반복인양 양지의 걱정만큼 당황한 기색이 적다. 안주인격인 용남언니 역시 이집 일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어떤 감정 표출도 없이 의연하게 앉아있어 집안 분위기에 한 점 무게를 더 보태는 것 같다.

막 밖으로 나가려는 용재를 보고 잠시 잊고 있던 일을 채근하듯 용재할머니가 말했다.

“재야, 너가부지는 우짜고 왔노?”

“차가 고장 나서 곤치 갖고 온다꼬 새터서 좀 늦게 뜬답니더. 아부지는 그때 가서 모시고 오모 됩니더. 할무이 제가 나가서 유월이 찾아 볼께예.”

귀한 손님인 양지에게 못 보일 것을 보인 듯한 송구스러움이 느껴졌는지 양지를 향해 고개를 꾸뻑해 보인 뒤 밖으로 나가려는 용재에게 조모가 다시 지시를 했다.

“재야, 마을회관에 가서 방송부텀 먼처 해라.”

“예, 지도 먼저 그랄라꼬 했심니더.”

용재가 나가자 본의 아니게 일어난 소란통을 손님에 대한 실례로 알고 무마하려는 듯 안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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