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7)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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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7)

“아아들 이모님도 오싰는데, 손 오자 도둑 든다꼬, 참말로 송구합니더.”

“아닙니다. 저야 아무래도 괜찮지만 어떡하지요. 제가 도울 무슨 일이라도?”

“괘안을 낍니더, 짐승도 때로는 친구 좋아서 남의 집꺼정 따라가기도 하고 따라오기도 하거등예.”

주인의 여유 있는 마음가짐에 마음이 조금 놓인 양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가운데서도 보도를 통해서 본 적이 있는, 농촌을 돌아다니며 농산물 절도를 일삼는 도둑들이 있다는 피해 사례가 떠올라 불안함이 영 가시지는 않았다. 방송은 전파를 타고 농촌 마을 곳곳을 향해 번져 나갔지만 우표 625번인 용재네의 소를 데리고 있다거나 소를 보았다는 제보는 한 차례도 없었다.

그 사이 중풍 든 노인을 치료하러 갔던 용재 아버지가 용재의 손에 의지해서 같이 집으로 돌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안맹한 사람 특유의 기민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신중하고 사려깊은 언동이 마주앉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부드러움을 갖고 있었다. 책상 다리를 하고 앉은 그는 마치 참선을 하는 도인처럼 허리를 곧추세운 자세로 양지를 향하고 있는데 의젓한 풍모가 불구나 지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수정하지 않고는 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용재의 아버지인 형부는 마음으로 느끼는 친근감을 표시하고 싶었는지 이런 말도 했다.

“우리 아이들 엄마 안 같이 처제는 체수가 마르신 것 같은디요?”

보이지 않는 색안경 속의 눈으로 어떻게 잘 보이는 사람 같은 소리를 할까, 놀란 양지는 자세를 고쳐 앉지 않을 수 없었다.

“침을 오래 놓다보면 앞에 앉은 사람 기척이나 숨소리만 들어도 알 수 가 있게 됩니다. 처제처럼 체형이 마른 사람은 성격이 조급한 고로 소화가 잘 안되고 때로 숨이 콱콱 막히는 증세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혈액순환이 잘되고…….”

모두들 소를 찾으러 나가고 집에는 어른들의 걱정거리만 덧칠까 집 밖으로 못나가게 당부를 받은 어린 아이들만 남아 티브이를 보거나 잠을 자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으나마 평범하지 못한 묵은 사연 때문에 형부와 처제 사이의 대화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또 살림밑천이나 다름없는 유월이가 돌아오지 않는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까지 가세해서 마주 앉아있는 것도 어색했다. 자리를 뜨기도, 같이 앉았기도 마땅찮은 자리를 어떻게 개선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온 몸을 땀으로 적신 용재의 할아버지가 들어왔는데 역시 고삐는 들려있지 않았다. 중요한 가족처럼 아끼던 소의 실종으로 불가피한 경제손실을 앞두고도 그들은 여전히 각박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체 믿는 무엇이 있어 이들을 의연하게 받쳐주는가. 좋든 궂든 무언가가 싸이고 싸이면 부피가 생기고 그 내면에는 부드럽고 느긋한 영역이 형성되는데 이들 가족 또한 그런 류의 내공이 없으면 소지할 수 없는 여유를 갖고 있는 것이다

“헛 그놈의 거.”

“아무데도 없습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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