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8)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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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8)

“그러시. 산으로 들로 가근방에는 동네 사람이 모두 풀려서 찾고는 있는디... .”

부자간의 대화에 양지도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농촌 마을을 돌면서 농산물이나 가축을 훔쳐간다는 자들의 소행으로 혐의를 돌릴 수밖에 없다.

“혹시, 파출소에도 연락을 해야지 않을까요?”

“글씨요,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는디. 만약 그 자들 소행이라모 일찌감치 포기 하는 기 나을끼고.”

“그렇십니더 아부지. 우리 물건이 안될라카모 아무래도 안됩니더. 시장하실 낀데 저녁이나 잡수입시더.”

연세 높은 부모에 대한 배려가 깔린 아들의 제의에 늙은 아버지도 동의를 했다.

“그래, 저녁이나 묵자. 모처럼 아아들 이모님도 오ㅤㅅㅣㅆ는디 이런 수선을 피아서 낯을 들 모책이 없십니더.”

“저는 괜찮습니다. 마음 쓰지마십시오.”

양지가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얼쩡거리는 사이에 부엌 사정에 어두운 노인과 시각장애인인 아들이 한참을 털걱거린 뒤 저녁상을 차려 내왔다. 양지의 밥상도 따로 차렸지만 양지는 그들이 두 번째 상을 내오기 전에 그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얼른 자리를 피했다.

“아아들 이모님, 이모니-임!”

바깥사장어른과 더불어 용남의 목소리까지 자신을 찾았지만 양지는 가만히 숨결을 죽이고 숨어 있었다. 불빛조차 더욱 어두므레한 집안에서는 수저소리만 여일하게 들렸다. 전후 사정을 싹 무시해버린다면 지극히 평화스럽고 단란하게 보이는 이 소리가 양지는 참 기이하게 느껴졌다. 크다면 엄청 클 수도 있는 일을 당했음에도 이 가족들이 보이는 제가끔의 행동은 양지를 자꾸 사람살이의 미궁으로 끌려들게 만들었다.

푸르른 달빛이 온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가운데 밤매미 소리만 요란하게 천지간을 꽉 메우고 있다. 간간이 이 집의 일과는 상관없는 자동차가 먼 행길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건너 마을 인가에서 흘러나와 점점이 수놓인 불빛도 무심한 낭만을 연출하고 있다. 그에 동참하듯이 먼 산 어디선가 소쩍새 소리도 들렸다. 양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초능력을 가진 커다란 누가 있어서 이 집을 내리누르고 있는 불우함을 포장 벗기듯이 훌렁 걷어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그런 바람에 비해 눈에 띄는 사물은 불변의 원칙을 지키는 것처럼 너무나 묵묵하고 침착해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피치 못할 일을 당한 채 어느 구석에서 신음하고 있을지 모르는 유월이를 찾아 사람들은 산야를 헤매고 있을 텐데 말이다. 낮에 소가 매여 있었다는 장소까지 답답한 마음으로 가보았던 양지는 무수하게 맴돌면서 소가 남겨놓은 발자국을 보고 돌아섰을 따름이었다.

밤이 이슥해졌는데도 소는 찾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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