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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83>남해 호구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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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1  14: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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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산 정상 봉화대에서 서포 김만중이 위리안치됐던 앵강만과 노도(오른쪽 끝)가 보인다.

 

‘호구가 되려고 호구산에 가느냐’ 농 섞인 말에 웃음으로 답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호구(虎口)라는 말이 생각나서다.

그래서일까. 산 아래 남해사람들은 호구산이라고 부르지 않고 한자 ‘원숭이 원’을 써서 원산(猿山)이라고 부른다. 또 산 정상석에는 원숭이의 옛말 납(나무 사이를 날라 다니는 동물)을 빌려 ‘납(猿)산’이라고 새겼다. 정작 이 산의 공식 이름은 한자 범호, 언덕구를 써 호구산(虎丘山)이다. 해안에서 올려다보면 원숭이 형상이긴 하고 어떨 땐 호랑이 같기도 하다. 지리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긴 하나 바다를 건너올 수 없고 원숭이가 한반도에 있을 리 만무하니 예부터 산이름은 원·호(猿虎)의 유무가 아니라 형상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한양에서 천사십오 리’, 휴대폰도 없던 시절 조정에서 까칠하게 바른말했던 선비를 쫓아 낼 곳은 한양 땅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였다.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서른 명이 넘는 선비가 남해에 유배됐다. 그 중 한사람이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1637~1692)이다. 서포의 유배지는 호구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앵강만 바다에 동그마니 떠 있는 노도이다. 그는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희빈 장씨에 빠져 인현왕후를 폐위시킨 숙종(1661∼1720)을 풍자한 국문 소설 ‘사씨 남정기’를 썼다.

호구산(618m)은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에 소재한다. 국립공원구역 금산, 설흘산, 망운산과 더불어 남해를 대표하는 산이다. 1983년 11월 송등산, 괴음산과 함께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정상부근은 암봉이고 앞에는 앵강만의 풍경이 다도해와 어울려 절경을 자랑한다. 왼쪽엔 금산, 오른쪽엔 설흘산이 위치한다. 이 호구산에 막바지 단풍이 절정인 늦가을에 맞춰서 올라갔다. 등산로엔 갈참나무잎이 깔렸고 하늘엔 단풍잎이 눈꽃처럼 날렸다.

 

   
등산로:남해 호구산 용문사→염불암·백련암→송등산·호구산 첫 갈림길→두 번째 전망대 갈림길→호구산 봉화대→송등산·용문사갈림길→송등산(반환)→용문사 회귀.


오전 9시 50분, 명찰 용문사가 들머리이다. 차량으로 숲길을 따라 오르면 일주문 앞 주차장이 나온다. 왼쪽 계곡은 최근 사방사업을 해 정돈이 돼 있다. 일주문에서 절까지 오름길 좌우에 펼쳐지는 풍광이 좋아 신도뿐만 아니라 여행객이 자주 찾는다.

시멘트도로 끝 언덕 뒤에 용문사가 나타난다. 창건연대는 모르지만 신라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웠다는 보광사가 훗날 이곳으로 옮겨와 용문사가 됐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불타버려 다시 지었다.


임란 당시 사찰 승병이 활약한 공이 있어 숙종 때 수국사로 지정돼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한다. 대웅전은 처마에 수수한 단청과 달리 역동적인 용을 형상화 한 조각을 품고 있다. 호국사찰인 만큼 절의 재건에 장인이 지원됐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국가지정 보물 제1849호이다.
 

   
구유.


일명 구시통으로 불리는 구유가 눈에 띈다. 원래 구유는 소 먹이를 담는 그릇인데 많은 신도들이 운집하는 법회나 대작 불사를 회향할 때와 유사 시 승병들의 밥을 퍼두던 용기로 발전했다. 둘레 3m, 길이 6.7m크기로 100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을 담았다 한다. 유형문화재 427호이다.

오전 10시 10분, 용문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200m가면 백련암, 300m지점에 염불암이다. 염불암 옆뜰에는 수 백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앞뜰엔 가지가 많은 늙은 서어나무가 자란다.

등산로는 염불암 마당 앞을 가로 질러 당우 모롱이를 돌아 산신각으로 이어진다. 등산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스님들이 기왓장에다 자세하게 안내해 놓은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낙엽길.


이때부터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든다. 가을색이 선명한 아름다운 길, 대기 속을 파고드는 정갈한 햇살이 단풍잎을 관통해서 땅바닥 낙엽까지 갈빛으로 물들였다. 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버석이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누가 이 한적한 산에다 자연의 붉은 카펫을 깔아놓았는가. 또 누가 이런 낙엽을 밟는 사치를 허락했는가. 산 꾼만이 지닐 수 있는 호사에 진정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느끼지 못하면 허사로인데, 한 움큼 낙엽을 허공에 날려본다. 그 속을 지나면 몸도 마음도 덩달아 붉어져서 자동적으로 상기된 표정이 된다. 산신각을 지나면 나무에 달린 이파리는 줄어들고 단풍은 더 붉어진다.

당초 생각한 것보다 된비알이다. 출발 30분만인 오전 10시 22분 첫 갈림길에 닿는다. 왼쪽이 송등산 방향, 오른쪽은 호구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절에 왔던 사람들이 산책을 하면서 쌓은 소원돌탑들이 사람처럼 쳐다본다.

첫 갈림길에서 40분, 두 번째 갈림길이다. 호구산 정상을 ‘앵강고개’로 표기해 놓았는데 김만중이 노도에 향할 때 넘었다는 고개란다. 여기서 앵강은 꾀꼬리 앵(鶯)과 물강(江)을 쓴다. 꾀꼬리가 많이 울어 눈물이 강을 이뤘다는 설이 있다. 인근에 꾀꼬리의 순우리말 곳고리라는 지명이 있어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정확한 어원을 알수 없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100m정도 옮겨가면 탁 트인 자연 전망대다. 왼쪽 금산과 상주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상주면, 오른쪽이 설흘산으로 유명한 남면이다. 호수처럼 조용한 바다, 크고 작은 섬들…, 그 사이 꾀꼬리 바다 앵강만에 서포 김만중이 유배했던 노도가 있다. 그는 공조판서, 대제학 등 고관대작을 지낸, 요샛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 난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서 그가 속했던 서인이 실각하자, 숙종 15년(1689)관직을 박탈당하고 노도에 위리안치 됐다. 남해 사람들은 김만중을 놀고먹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노자묵자할배’라 불렀다 한다. 국문소설 ‘사씨남정기’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위로 글인 ‘구운몽’을 이곳에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따르면 선천에 유배됐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숙종 18년 56세의 나이로 노도에서 생을 마쳤다.

 

   
호구산 정상과 봉화대


오전 11시 10분, 호구산 정상, 비스듬한 암반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한 중앙에 봉화대가 세워져 있다. 한쪽만 보였던 정경이 360도 발아래 보인다.

봉화대는 남동쪽 금산 봉수나 혹은 남서쪽 설흘산 봉수에서 받아 당시 본현이었던 난포현 지금의 이동면으로 연결했다.

서쪽으로 송등산의 마루금이 굽이치는 모습이 선명하다. 저녁노을을 받은 듯한 단풍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주로 완만한 오름길이지만 가끔 기묘한 바위가 조경석처럼 박혀 있는 내리막길도 있다. 길바닥엔 여전히 갈참나무 이파리가 두껍게 쌓여 밟는 느낌이 좋다. 미끄러지는 것만 피하면 꿈결처럼 아름다운 천상의 산책 길, 갈색 가을길이다.

낮 12시 10분, 작고 앙증맞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송등산에 도착한다. 뒤돌아보면 호구산 진행하면 괴음산이다. 오른쪽 산 중턱에는 태고 적 돌강이 형성돼 있다. 1년 전 쯤, 이 너덜겅을 통과해서 송등산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바위들은 인위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면 바위 사이가 틈이 작았을 텐데 이 너덜은 자연적으로 얹혀 있기 때문에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부상을 염려해야할 만큼 어그러지는 소리가 난다. 오후 1시 10분, 반환해서 호구산으로 향하다 중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용문사 방향이다. 용문사에 의미 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여느 절과는 달리 사찰 입구 사천왕문 자리에 용문각이 서 있다. 보통 사천왕이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인데 이곳은 마귀가 아닌 부정한 양반이나 관리를 짓밟고 있다. 조선시대 타락한 지방 관리와 유생들에 대한 횡포를 간접적으로 희화한 것으로 보인다. 오후 2시 30분께 용문사에 회귀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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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든 호구산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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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등산 방향에서 바라본 호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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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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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산 정상과 봉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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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겅과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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