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다음해 가을날을 위해서
[월요단상] 다음해 가을날을 위해서
  • 경남일보
  • 승인 2017.11.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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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수기의 월요단상>
자연의 순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초목도 빛바래어지고 떨어지는 낙엽과 열매를 보노라면 한해가 마무리되는 듯 허전하고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흡사 우리 인간의 삶도 초목과 같은 것처럼 가을철로 마무리 될 수도 있는 듯한 그러한 느낌 탓일까? 아니면 추위가 오기전 가을까지 일을 끝내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면서도 후회스러움마저 느끼게 되는 것도 가을이라는 계절 탓일지도 모른다.

가을이라는 수은주의 알맞은 계절을 놓치고 나서야 춥고 추운 겨울에 뭘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때면 가을에는 한해가 현실적으로 끝나는 듯 발바닥에 밟히는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에 덧없고 공허한 찬바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놓고도 실제로 하고자 했던 것들이 정녕 무엇이었나를 떠올려 보며 머뭇거리게 되고, 또 생각해 낸 것들이야 말로 누가 알까 부끄러울 정도로 하찮은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었으리라.

큰 사명 같은 것을 띠고 이 세상에 온 건 아니기에 우리의 활동 역시 늘 게을렀는지도 모른다. 올바르게 보내자던 건 더할 나이 없이 하찮은 것들이었고, 또 중심적인 우리 자신과의 약속들이었지만, 자신과의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때로는 그 약속들이 무엇들이었는지 조차도 잊어버린 채 엄벙덤벙 되는 대로 한해를 보내고 나서, 어느새 우리가 한해의 마무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가을에 이르게 된 건 아닐까.

어느 때에 가서는 자신의 부질없는 생각이 벗겨지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현실에 놀라고 좌절하다가는 끝끝내 어느 가을날 발목을 적시는 서리 길을 걷다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맡겨진 임무의 짐을 벗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임무도 기망(企望)도 지니지 않은 이의 가뿐함과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음에 행복해지길 원했다고 볼 수밖에는. 그래서 초목처럼 자연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 곧고 바르고 참되게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데서 기쁨이 충만한 삶을 느끼고 싶어 했으리라.

삶에 계획도 없이 세월만 헛되이 보내며 방황하다가 무능을 탓하고 결국 허박(虛薄)해 진다해도, 이제는 충실하게 일을 해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남들이 어떻게 여기든 자신에게 가치 있고 뜻 있는 일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이 가을 최선을 다한 삶이 되도록 하자. 아니 다음해 가을날 오늘 같은 날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오늘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수필가 이수기의 월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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