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9)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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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9)

집에 모여서 같이 흘린 땀을 닦고 경미할머니가 내놓은 농주를 나누어 마신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닷새 장이나 훑어보자고 실낱같은 희망을 뇌었지만 이제 소는 멀리 간 것이라 단념할 수밖에 방법이 없는 무언의 결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텅 빈 외양간을 둘러 본 용재할아버지가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평소에 하듯이 옆에 있던 소꼴 한 아람을 외양간 안으로 던져 넣는다.

행여나 무슨 소식이라도 있는지 집으로 들어왔던 용재는 주린 허리를 다시 조여 맨 채 달려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마을의 불빛도 하나 둘 소등 되어간다. 양지는 용재가 나가기 전에 이모로서 그 애의 힘이 되어 줄 말 한 마디 못해 준 것이 아쉬워진다. 어린 것이, 이 집에서 제일 활동력 있는 구성원인 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땀범벅이 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뛰어 다니고 있을 지 행여 그 아이마저 신변에 무슨 일을 당하면 어쩌나 조바심이 일었다. 용재야, 걱정 하지 마. 이모가 유월이 한 마리 다시 살 수 있는 돈 부쳐줄게. 진작 했어야 될 말이었다.

그때, 집 쪽에서 공 구르는 듯한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경미가 뛰어나왔다.

“유월이 찾았어요! 이모! 우리 오빠가 소 찾았대요. 제 새끼 찾아서 곰실까지 갔더래요.”

새끼를 지난 장날 내다 팔았는데 어쩌면 거기 갔을지 모른다는 짐작으로 용재가 전화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에야 어미가 새끼랑 같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그쪽 주인이 답을 준 것이었다.

경미의 외침이 끝난 후에 마을의 스피커 소리가 고요해진 밤공기를 타고 흘렀다. 온 마을에 축제의 물꽃이 터지듯 집집마다 불이 켜졌다.

“아이고, 새끼 떼서 보내고 그리 울면서 헤매고 야단이더니, 새끼 간 곳을 우찌 그리 찾아갔을꼬.”

“짐승이라꼬 거저 짐승이가, 에미 코에 백인 새끼 냄새를 쫑가서 갔겄제.”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불편한 이 집 어른들을 대신해서 당장 가서 소를 몰고 오겠다는 이웃도 나섰다.



용재의 집을 떠나 온 다음 날 양지는 팔려 간 송아지를 다시 사올 돈을 용재네로 부쳤다. 유월이는 고삐에 끌려 돌아왔지만 자식을 그리워한 어미 소나 어미를 잊지 못하고 죽을 듯이 날뛰던 목매기의 감동스러운 상봉과 이별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양지를 움직였다.

유월이의 새끼는 용남의 병원비 때문에 지난 장날 우시장에서 생이별을 했다. 한 이틀 떠나보낸 새끼 때문에 허둥대면서 허공을 향해 새끼 찾는 피울음을 울고는 했지만 이내 그 큰 눈을 끔뻑거리면서 먹이를 챙기기에 그러면 그렇지 별 수 없이 무딘 짐승이니 단념하고 감정정리를 한 것이거니 안심하고 있었는데 숨기고 있던 애절함대로 기어이 새끼가 있는 곳을 찾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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