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약한 사람이 먼저다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경일포럼] 약한 사람이 먼저다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11.2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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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언급하는 것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이다. 사람중심 경제라는 용어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도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에서 파생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1월 15일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시험장 몇 곳에서 피해가 발생하자 수능시험을 1주일 연기한 일이다. 어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진정 사람이 먼저인 나라임을 보여주었다고 극찬하는 기사도 게재하였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의 구호인 Putting People First와 비슷하고 두산의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문구와 닮았기에 표절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의 의미를 따져보고 정확히 이해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 슬로건은 이념, 권력, 돈, 학력, 지위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슬로건에는 조직이나 회사의 이익보다 조직원이나 회사원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생각도 담겨져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생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 많은 국민들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도 그 중 한 사람이므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은 좋은 정치 구호이다.

그런데 이 슬로건은 청산의 대상마저도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해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이 권력과 금력을 과할 정도로 누리면서 적폐를 만든 사람들이 더 좋아 할 수도 있다는 데서 야기된다. 자신들이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도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에 편승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이념이나 권력, 돈, 학벌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적폐도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그 동안 특혜를 누리던 사람에게 당신이 먼저라고 배려해주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에 ‘사람이 먼저다’에서 사람을 ‘약한 사람’으로 범위를 좁히는 것이 요구된다. 좌초하는 배에서 약자인 아동, 노인, 임신부, 여자를 먼저 하선하도록 배려하는 것처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때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하는 약자들이 있다. 다수의 사람보다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에 속하기 쉽다. 세상에는 장애인, 다문화인, 피고용인, 피교육자, 저소득층 등과 같이 약한 사람들이 많다. 돈이나 권력이 없어서 ‘갑질’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갑질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려면, ‘약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교육계에도 약한 사람이 많이 있다. 평가를 실시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고 평가받는 사람은 약자다. 교사나 교수는 교권을 가지고 학생을 평가하는 사람이므로 강한 사람에 속하고 교육을 받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생이 약자에 속한다. 다수의 일반학생보다 소수의 다문화학생이 약자며, 다수의 비장애학생보다 소수의 장애학생이 약자다. 따라서 학교에서 ‘약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면, 우리는 교사나 교수보다 학생을 먼저 고려해야 하고, 다수 학생보다 소수의 학생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함에 따라 수능시험에 임하기 어려운 소수의 수능수험생들이 발생하였고 정부는 신속하게 시험날짜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약한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며 큰 박수를 받을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도 계속 ‘약한 사람’을 먼저 고려하고 배려하는 정책을 펼쳐주기 바란다.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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