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1)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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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1)

뭐가 무서워서 이사를 가느냐고, 귀남은 한사코 버텼지만 양지는 저나 귀남을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데까지 멀리하고 싶었다. 시집도 못가고 죽은 미래의 처녀 귀신을 바라보듯 괴이쩍어하는 시선을 의식하고 양지가 근신하자는 말만 입 밖에 내도 귀남은 어떤 인간이 그렇게 보느냐고 발끈 화를 내며 누구든 붙잡고 시비를 걸려 했다. 큰 나라에서 자유스럽게 살든 습관으로 기죽지 않으려는 인권주장은 당연하달 수 있지만 제 행동에 대한 반성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여자의 행티는 그야말로 꼴불견일 거였다. 용재네의 일로 그나마 한 가닥의 보람은 맛보았다.

이틀 후 뒤쫓다시피 잰걸음을 한 용재를 따라 양지네 자매들은 병원으로 갔다. 병이 진행되기 전에 엄마의 건강을 찾아주고 싶다고 용재는 아직 낯익지 않아서 서먹할 법한 이모들인데도 응석처럼 보챘다. 그것은 아이의 혈육에 대한 든든한 믿음 때문일 것이라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였음에도 아버지를 위시한 세 자매가 다 같이 조직검사에 응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막상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아이가 실망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낼지도 신경 쓰이는 과제가 됐다. 양지는 그 애의 이모가 나 혼자만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돈이나 댈까 살가운 정 한 올 표시하지 않는 호남이나 귀남을 보면 걱정을 도맡을 사람은 자기 밖에 없는 착각인지 모를 지각 때문에 관심을 갖고 독려에 나섰다. 아무튼 용재와 그의 가족들이 얽혀서 살아가는 모습을 본 후로 삶에 대한 천착도 훨씬 소박하고 겸허해졌다. 사람들은 얼마나 허명을 좇아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질주하는가. 오직 눈앞의 것에만 이끌려서 달리다가 문득 주위를 살펴보게 하는 안목은 시련과 나이 밖에서는 찾기 어렵다.



며칠, 하늘이 파랗고 그 하늘 가운데로 멈춘 듯 흘러가는 하얀 구름 몇 점을 보면서 참 높고도 넓은 하늘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절대적인 높이 위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신의 눈길을 의식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선한 그의 의지를 믿고 평안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마에 밴 땀을 훔치는데 저 아래서 올라 온 승용차 한 대가 농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게 보였다. 관심을 끊고 우사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물통과 넉가래를 수거하여 창고에 넣고 나오는데 손님이 왔다면서 목부 정씨가 양지를 부르러 왔다.

손님은 명자언니였다. 양지가 이곳에 눌러앉고 난 뒤 처음 대면이었다. 교통도 좋지 않은 이곳까지 승용차를 몰고 그녀가 찾아오리라고는 예상 못했던 터라 차 대접을 하면서도 성마른 궁금증이 자꾸 머리를 디밀었다. 집터를 깔아뭉개듯이 고속도로가 뚫렸고 고향에 올 때면 그녀는 그 고속도로를 탔다. 안타깝고 절절한 아쉬움으로 수용 거부했지만 국가가 하는 일이라 어쩔수 없이 넘겨주었다고, 양지네가 보일 반응이 궁금한 정자 패들이 묻지 않는 그쪽 일을 속속 전달해 주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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