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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페이지] 소녀와 할머니 (7·끝)진주 평화기림상과 ‘기억의 임무’
김지원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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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12: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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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상과 대구 희움역사관.

통영, 거제, 남해, 창원, 부산·울산을 거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찾아봤다. 김해에서 기림비 사업이 한창 추진중에 있지만 현재로서는 경남 막내로 탄생한 진주 ‘평화기림상’를 만나볼 차례다. 올 3.1절에 제막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니 진주지역 기림상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지난 4월 평화기림상 건립보고서를 발간했다. 기림상 건립과정을 상세히 담은 소책자에는 추진위가 모금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바로 알리는 수업을 진행한 결과물도 들어 있다. 미래세대에게 과거를 전달해주는 매개체로서 기림상 사업의 역할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추진위 박혜영 집행위원장은 “12.28 합의 후 열렸던 301 아리랑 행사에서 기림상 추진이야기가 나왔다. 12.28 합의의 부당성을 이야기 하면서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초기에는 기금모금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역의 학교들이 동참하면서 참여분위기가 일어났고 막판에는 혁신도시 노동조합들이 적극 참여해서 기금 모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며 모금 과정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추진위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교육에도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쳤다.

 
   
박혜영 기림비 건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박 집행위원장은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다른 지자체들이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기림비사업을 진행하거나, 기금 모금에 큰 몫을 냈던데 비해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고 전했다. 시민추천 1순위로 나왔던 진주성이 아닌 진주교육청 마당이 건립장소로 선정된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채택된 진주교육청 마당은 어린이운동 기념비나 강상호 선생 비석이 어우러져 교육적 장소로 평화기림상에게 잘 어울리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더욱이 인근 진주초등학교는 진주출신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 할머니가 당시 요시노 보통학교 였던 이 학교를 다니다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진주 ‘평화기림상’은 지역작가의 작품으로 제작됐다. 진주미협 노주현 지부장의 추천으로 이명림 작가를 소개받아 5개월여에 걸친 제작기간 동안 토론과 의견 수렴 속에 ‘평화기림상’이 탄생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 열기 속에 기림상의 디자인이 나왔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소녀와 여인의 모습을 아우르고, 과거와 현대를 관통하는, 미래지향적 느낌의 강한 이미지를 요청했고, 작가의 표현으로 기림상의 모습이 탄생한 것이다. 사실 진주 기림상의 외모는 여타 소녀상·기림비와 다소 다르다. 고전적 얼굴 모양이라기보다 서구적 외모를 띄고 있는 것. 한쪽 어깨를 내밀고 선 모습으로 힘없는 소녀를 상징한다기보다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다. 키가 160㎝으로 다른 소녀상 보다 조금 크기도 하다.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을 새긴 둥근 단 위에 올라서 있어 눈높이를 맞추기는 조금 어렵다.

   
3·1절에 열린 '평화기림상' 제막식


올 3.1절에 열린 제막식에는 경남도교육감이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진주민예총의 살풀이 공연, 성모유치원의 합창공연 등이 함께 열리고 모금기간 진행된 수업의 결과물을 행사장에 전시하기도 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성모유치원에서 원아들이 다 나와서 공연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자리가 모자랐다.돗자리도 괜찮겠느냐고 했더니 의자까지 가지고 오셨다”며 감격해했다.

올해 초까지 이어진 촛불과 태극기 집회로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던 시기에 열린 이날 행사에는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모여 뜻깊은 제막식을 열었다. 박 집행위원장은 “이 문제에서 만큼은 어떤 구분도 적용되지 않았다. 이념과 진보 보수, 세대가 모두 공감하는 문제다. 새 정권에서 위안부 협상도 재협상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추진위는 ‘평화기림상’ 건립 이후 추진위에서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진주평화기림사업회로 명칭을 바꾸고 기림상의 유지관리, 교육활동, 위안부 관련 영상물 상영행사 등을 펼치고 있다. 기림사업회는 지난 9월 평화기림상 배지를 제작판매하기도 했다.
 

   

진주교육지원청 마당에 새워진 '평화기림상'

건립단체 :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진주지역 기림상 건립추진위원회
장소 : 진주교육청 마당
기금모금 : 시민모금 7800만원 (2016년 5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혁신도시 노동조합 등 각급 단체, 학교 등 시민 4200여명 참가
작가 : 이명림 조각가
건립형태 : 전신상, 보따리, 성금 기부자 명패
소재 : 브론즈, 하단 대리석
크기 : 160㎝ 전신상, 2m 하단 원형 기단.


소녀와 할머니
20만명의 소녀와 여인들이 끌려갔다가 2만명이 돌아온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사연. 12·28 한일 합의가 오히려 무관심했던 사람들의 관심까지 불러 일으켰다. 돌아온 피해 할머니들 조차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 힘들었던 그동안의 사회분위기였다. 피해 당사자들이 “내가 피해자였다”고 사죄를 요구하기 시작한 지 25년이 지나 돌아온 졸속 합의에 사람들의 분노가 이어졌다.

1918년에 태어난 김복득 할머니는 20년 후인 1939년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다가 7년 후인 1945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28살, 아직 어린 여인은 40년 세월을 침묵 속에 살아냈다. 일흔일곱에 피해자 등록을 했고, 아흔에 처음 피해자 증언을 했다. 아흔 넷에 1000회 기념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소녀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행사다. 소녀와 만난 할머니는 자신의 소녀시절을 떠올렸을까 궁금해진다.

전국에 흩어진 기림비는 ‘평화의 소녀상’ 같이 소녀 모습이기도 하고 ‘평화기림비’처럼 여인 모습이기도 하다. 모두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는 모두 같다. 소녀와 할머니는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 곁의 소녀상, 기림비를 찾아가 만나보는 일은 과거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임무가 됐다. 
 

   
부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만난 황동욱씨.


소녀상을 기록하는 사람
부산 평화의 소녀상을 촬영하러 나온 황동욱씨를 만났다. 황씨는 부산대 나노에너지과를 다니고 있다며 전공은 아니지만 소녀상의 이미지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촬영을 나왔다고 했다. 소녀상 설치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황씨는 ”당시 화가 많이 났다. 부끄러웠다. 소녀의 시점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조례제정 등 소녀상 관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시에 대해 황씨는 “관리를 시에서 맡아서 해주어야 한다. 소녀상의 의미에 대해 너무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황씨 가족은 소녀상 설립과정에서 기금 모금에 동참했다.

 

   
일본 총영사관을 지키고 있는 의병들은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새로운 임무도 맡았다.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
설치 후에도 많은 갈등을 표출된 부산 ‘평화의 소녀상’은 총영사관 경비를 맡은 의경들의 보호 아래 있었다. 후문 입구에 있는 경비초소에 근무하는 4인 1조의 의경들(김태윤 수경, 이상영 상경, 이동원·이인혁 일경)은 경비임무와 더불어 소녀상을 지키는 일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동부방범순찰대 소속인 이들은 “근무 지시에 따라 평화의 소녀상도 함께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쓰레기를 투기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단속한다”고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 임무를 설명했다. 일본의 공관 앞에 설치된 두번째 ‘평화의 소녀상’으로 수난을 겪어온 부산지역 소녀상에겐 든든한 경비대원이 생긴 셈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사회적 소비'를 전도하는 안수지씨.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
경남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만난 안수지씨(카페 달콤쌈싸롬)는 앞치마에 작은 배지 하나를 달고 있다.
12·28 협상후 진행된 ‘작은 소녀상’ 펀딩의 리워드 배지다. 졸속 협상에 반발한 시민들이 적극 참여한 ‘작은 소녀상’ 펀딩은 이틀만에 목표액 1억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안수지씨도 펀딩에 참여해 카페에 작은 소녀상을 들여놓았다. 안 씨는 평소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브랜드 제품을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마리몬드나 희움 브랜드 제품들은 판매대금의 일부를 위안부 피해자 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의미있는 소비활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 씨는 “처음에 희움에서 나온 가방 펀딩에 참여했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압화 도안으로 만든 것이었다”며 그 때부터 해당 제품들을 사용하고 친구들에게 소개도 해왔다고 전했다.
 

   
카페 달콤쌉싸롬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작은 소녀상'


안 씨는 “일본은 강경한 목소리 내는 피해자들이 돌아가시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며 “정권이 바꼈으니 위안부 합의 재검토, 파기까지 기대한다”고 했다. 안 씨는 희움제품을 사용하면서 희움 역사관에 대해 알게 됐다며 “이런 공간이 있다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자료를 한 곳에 보존하고, 방문객들은 이 곳을 방문하면서 피해자들의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아픈 역사 역시 우리 근현대사니까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며 역사관 건립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전도사 노릇을 해왔다는 안 씨는 “초기엔 의미있는 일이라 디자인은 좀 무시했지만, 요즘엔 디자인 좋은 제품들이 많이 나와 예뻐서 사고 싶은 것들도 많다”며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소비활동을 전도하는 한마디를 보탰다.
김지원기자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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