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2)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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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2)

“언니, 나 바쁜데.”

양지가 보내는 의아스러운 기색을 의식한 명자가 먼저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엄니가 아파서 들여다보러 왔던 김에 너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갈려고 왔어.”

“아줌닌 언제나 건강하게 잘 사실 것 같앴는데…….”

“얘도 우리 나이가 벌써 얼만데-. 엄마까지.”

그러고 보니 잘 가꾸어서 곱고 단정한 자태이긴 하지만 명자의 얼굴에도 나이든 태가 완연히 난다. 명주비단처럼 잔주름이 자리 잡은 얼굴은 제 아무리 겉을 가꾸어도 어린 시절에 받은 궁기의 타격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 지금 병원에 계신거야?”

“아니 그렇게 몸까지 심각한 건 아니고……. 사실은 잠자리가 그렇게 어지럽다 카네. 하도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도 잘못자고 골이 아파 머리도 바로 들 수가 없단다.”

“엄청 마음 쓰이는 무슨 일이라도 있어 스트레스가 심하신가봐.”」

“너도 이제 나이를 먹긴 먹었네. 말만 듣고도 병이 어떻게 왔는지 얼추 짐작을 하고. 실은 너랑 의논 좀 할라꼬.”

순간 양지의 전신으로 알 수 없는 냉기가 착 날아와서 피부에 감겼다.

“다른 게 아니고 울 엄니 꿈에 너거 엄니가 그리 자꾸 보인단다. 죽어서 좋은데도 못가고 떠돌아 댕길라니 힘들어서 죽겠다고 형상이 말 아니게 해갖고 나타나서는 눈물을 흘리고 그런 단다.”

역시 그랬구나. 양지는 예리한 무엇으로 가슴을 찔린 듯한 통증으로 잠시 숨결을 멈추어야 했다. 잊으려했으나 잊히지 않았던 상처가 드디어 곪아가고 있었던가. 그러나 양지는 내색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또 무슨 소리라고. 나는 그런 거 안 믿기도 하지만 어머니 혼령은 절에서 벌써 몇 번이나 천도제를 지냈고. 그런 거 다 소용없어. 우리 언니 해원굿 하다가 엄니가 그 일 당한 거 언니도 들어서 알거 아니가. 안 좋기는 뭐. 아줌니 맘이 짠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 우리 귀남 언니도 죽었다던 사람이 찾아왔는데, 난 그런 거 안 믿기로 한지 오래 됐어.”

강한 어조로 부정을 했다. 명자를 쏘아보는 눈길에도 송곳 같은 빛을 실었다. 곱다시 영면하지도 못한 어머니의 형상을 새삼스럽게 들추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하기싫었다. 그런 얘기하러 왔으면 어서 가라고, 양지는 명자를 밀어내는 시늉까지 했다.

“아이구 내사마 모르겠다. 엄니가 자기 딴에는 영단에다 정화수 떠놓고 빌었건만 안 된다고 이거는 너거하고 의논해서 해원풀이라도 꼭 해야 될 일이다, 계획이 그리 잡혔단다. 난 다만 울 엄니 뜻을 전할 뿐이다.”

말하지 않는다고 짐작조차 못하지는 않는다. 차마 기억하기 싫을 뿐이다. 자신을 불태우기 위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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