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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사회학
김수환(형평문학선양회 사무국장)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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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30  1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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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동물의 사회행동’이라는 저서를 낸 프랑스 낭시 대학의 디디에 드로즈 교수는 쥐 여섯 마리를 한 우리에 넣고 수영장 건너편에 있는 사료를 가져오게 했다. 예상과는 달리 모든 쥐들이 사료를 먹으러 가지 않고, 그 중 세 마리만 헤엄을 쳐서 먹이를 가져왔다. 먹이를 가져온 두 마리는 가지 않았던 두 마리에게 먹이를 뺏겼고, 남은 한 마리는 자기가 가져온 것을 먹었다. 출발하지도 빼앗지도 않은 쥐 한 마리는 먹이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이를 두고 드로즈 교수는 각각 피착취형, 착취형, 독립형, 천덕꾸러기형으로 분류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중에 동일한 형태를 보이는 쥐들끼리 여섯 마리씩 묶어서 실험을 했더니 똑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 중에서도 다시 착취형, 피착취형, 독립형, 천덕꾸러기형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쥐의 세계나 우리가 잘 아는 꿀벌들의 세계처럼 사람 사는 일도 그렇다. 모두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똑 같은 일을 하며 살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누군가는 지시를 하고 누군가는 허리를 굽혀야 한다. 누군가는 사무실에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공장을 지켜야 하며, 누구는 판결을 하고 누구는 항소를 하고, 누구는 돈을 많이 갖고 사는데 누구는 걱정거리를 많이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특히 인간들이 크게 착각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사회적 기능, 그 사람의 역할을 바로 그 사람의 인격과 동일시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인간 자체가 대통령, 고관대작은 빛나는 사무실만큼의 인간성을 갖춘 사람, 권력이든 돈이든 학벌이든 가진 만큼씩의 인격, 없는 만큼의 비천함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잃은 자는 적폐고 얻은 자는 정의, 가진 자는 완벽이고 없는 자는 허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의 세계도 저 레밍류들 처럼 얼마간의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피착취, 이익과 손해의 고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저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노비도 양반도 백정도 임금도, 사람이라는 저울 위에서는 수평이다. “갓 쓴 놈, 벙거지 쓴 놈, 패랭이 쓴 놈 푸줏간 고기는 모두 한 근씩이다” 새삼스럽고 유치한 말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 아니 나부터 먼저 돌아보자. 나보다 좀 더 안 좋은 배역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무시하지 않았는가, 고개를 숙였으되 고개만 숙이지는 않았는가. 내 배역이 나의 인격이고, 계급이며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김수환(형평문학선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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