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99)거제 기성관과 반곡서원
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99)거제 기성관과 반곡서원
  • 경남일보
  • 승인 2017.11.2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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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관


동기나 과정이 결과 앞에서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이 정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기부여나 과정의 가치관을 놓고 찬반의 논란으로 정쟁이 유발되어 피로 얼룩진 역사의 흐름을 되새기게 하는데 작금의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의 분란의 소용돌이가 400년 세월을 거슬러 효종의 죽음을 놓고 복상문제의 예송논쟁이 당파의 정쟁으로 회오리바람을 몰아치게 했던 우암 송시열선생을 생각나게 하여 위패가 봉안된 우암사가 있는 거제의 반곡서원을 찾아 길을 나섰다.

35번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종점인 통영 요금소를 나오면 거제로 이어지는 왕복 4차선도로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어 초겨울의 상큼한 바닷바람을 헤집고 게제대교를 단숨에 지나 사곡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이내 거제면사무소 앞에 닿았다. 느티나무 고목아래서 예스러운 솟을대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면사무소 마당에 차를 세우고 솟을대문으로 들어섰다. 널따란 마당 끝을 길게 가로 막은 원형의 주홍 기둥이 빼곡히 받힌 솟을지붕의 위용에 놀라서 얼른 다가가지 못하고 대문간에서 발길을 멈췄다. 문화유적을 탐방하다보면 어느 한쪽에 감동을 받으면 거기에만 치우쳐서 전체를 못 보는 실수를 수 없이 거쳤으니 웬만해서는 빠뜨리지 않지만 그래도 천천히, 차분하게, 더는 없는가를 습관적으로 되뇌면서 샅샅이 훑어본다. 마당 왼편으로 비석들이 늘어섰다. 세월의 무게에 녹이 쓴 철 비석과 마모가 심하여 판독조차 어려운 석비들이다. 관찰사, 삼도수군통제사, 암행어사, 현령, 부사 등의 송덕비이다. 요즘으로 치면 뇌물 받아 축재하기 딱 좋은 직위인데 보국애민의 숭고함을 기리는 송덕비다. 고개를 숙여 예를 가름하고 우리는 지금 누구의 송덕비를 세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입맛이 쓰고 어지럽다. 혼란스런 상념을 털고 기성관이라는 편액 밑으로 다가 섰다. 정면 9칸 측면 3칸으로 가운데 아홉 칸은 두 칸 너비로 폭을 넓혔고 솟을지붕의 3칸의 기둥은 이중의 대들보를 높이 올려 안에서 바라보는 천정의 웅장함과 40개의 기둥이 솟은 마루청의 광대함은 과히 위압적이라 한순간에 압도된다. 이중 서까래를 받힌 팔작지붕으로 3등분의 중앙은 솟을지붕이니 그 크기는 웅장하고 장엄하여 과연 통영의 세병관,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경남의 4대 목조건축물의 하나이다. 기성은 거제의 옛 이름으로 기성관은 거제관아로서 1422년 세종4년에 고현에 건립하여 이후 성종원년에는 옥포, 조라, 가배, 영등, 장목, 지세포, 율포 등 거제부 7진의 통할영인 군영의 본부였으나 임진왜란으로 고현성이 함락됨에 따라 현종5년에 성을 폐쇄하고 거제면인 현 위치로 옮겼다.

길 건너편의 부속건물인 질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문이 주먹마한 열쇠로 굳게 잠겨 있다.

지방관청의 육방을 비롯한 하급관리들의 사무실로 이용하던 건물로 작청 또는 연청이라고도 하는데 기성관과 함께 현종 5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왔고 일제강점기에는 거제현의 관청이 없어지면서 1926년부터 부산지방법원 거제등기소로 사용되었으며 1976년 경남도문화재료 지정되고 1982년 1월에 등기소가 고현으로 옮겨감에 따라 전면해체 복원되어 비로소 제 모습을 되찾게 된 파란만장한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애달픈 사연이 잠들어있다. 원래의 건물 배치는‘ㅁ’ 자 형이었는데 도시화 과정에서 도로에 닿는 부분이 철거되어 지금은 ‘ㄷ‘자 형이지만 27간이 넘는 대규모의 웅장한 건물이다. 양 측면은 주거용의 방이고 중앙은 사무를 볼 수 있는 대청마루로 화려하지도 섬세하지도 않은 소박함과 검소함이 묻어나서 엄숙함을 자아낸다. 기성관과 질청은 있으나 정작 관아의 본청인 동현이 없어 두리번거리는데 기성관을 마주한 거제면 사무소 울타리 옆에 작은 안내판이 몸 둘 바를 모르는지 어쭙잖게 붙어 섰다. 내용이 기막히니 아내판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동헌을 헐어내고 면사무소를 지었다니 이 무슨 망나니의 소행인가. 미운 짓은 고깔을 모로 쓰고 한다고 면사무소의 2층 외벽에는 ’거제시 역사와 문화의 고장 거제면‘이라고 벽면을 가득채운 조각글자는 낯 뜨거운 줄 무르고 햇볕에 반짝이고 사적 484호는 초겨울 갯바람에 눈물을 머금었다.



 
반곡서원과 세진암


반곡서원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계룡산 정상의 솟구친 바위들이 옥산 산성을 굽어보는데 골목길 어귀의 안내판이 ‘문재인대통령생가’ 1.3km라 하여 생가부터 들리기로 하고 차를 몰아서 생가 뒤편에 차를 세웠다. 커다란 트랙터가 사립문을 가로막고 개인 집이니까 들어오지도 기웃거리지도 말아달라는 ‘부탁의 말씀’이라는 표지가 붙었다. 아쉬움의 발길이 안쓰러웠던지 작은 모판을 놓고 손수 농사지은 잡곡물을 팔고 있는 일흔다섯의 공용악 할머니가 옷소매를 붙잡는다. 저기 2층집에 문대통령이 태어날 때 아기를 받아낸 여든여덟의 할머니가 사시고 그의 막내아들이 지금 생가에서 기거를 한다면서 그간의 경황들을 샅샅이 일러주며 계룡산, 산방산, 노자산, 선자산, 등 이산저산 내력까지 자세히도 일러주시는데 문화해설사가 울고 갈 정도로 어찌나 자상한지 너무도 감사하여 몇 번이고 손 흔들며 왔던 길을 되돌아서 반곡서원을 찾았다.

자그마한 주차장을 말끔하게 마련한 솟을대문은 나란하게 전통사찰 세진암의 종탑문루인 사천왕문과 이웃하여 높다랗게 우뚝 섰다. 층층석계를 올라 협문으로 들어서자 여느 서원과 같이 정면 강단에 좌우 동재와 서재를 거느렸고 뒤로는 단청이 짙어서 엄숙함을 더하는 사당이 마련됐는데 ‘우암사’라는 편액이 붙었고 직각되게 옆으로의 사당은 ‘동록당’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우암사는 우암 송시열선생을 주벽으로 김진규, 김창집, 민진원, 이중협, 이수근 등 6인의 위패를 모셨고 동록당은 동록 정혼성의 위패를 모셨다. 우암은 남인과의 예송논쟁과 희빈 장씨와의 맞섬으로 거제도로 유배되었던 연으로 선생을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숙종 30년에 창건된 것을 근작으로 복원한 것인데 선생의 인품이 묻어나서일까 예스러운 멋과 검소하고 간결한 맛을 지긋하게 풍긴다. 우암선생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오늘의 정치사를 놓고 뇌성벽력 같은 꾸지람을 기다리다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었다.

나란하게 이웃한 전통사찰인 세진암의 대웅전으로 들어섰다. 전갈하고 조용하여 호젓하지 그지없다. 아담하면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닫집에는 청홍룡이 여의주 하나를 서로가 마주 물었는데 주는 건진 앗는 건지 알 수를 없는데 유리 보호각 속의 자그마한 좌상 삼존불은 중생을 굽어보는 자비의 미소 속에 경건하고 엄숙함이 무릎을 꿇게 한다.

세진암에서 나와 뒷산인 계룡산의 수정봉 옥산산성으로 차를 몰았다. 옥산산성은 수정봉 꼭대기를 둘러쌓은 석성으로 보존이 잘된 상태이고 원형의 석축을 단을 지어서 안으로 깊게 쌓은 커다란 우물인지 천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발굴중이다. 신비스럽게도 산꼭대기에 꽤나 많은 물이 샘솟고 있어 두 번의 대통령을 나게 한 명산일까. 정수리의 웅장한 바위들은 계룡산을 등받이 삼고 위풍당당하게 서로를 껴안고 거제바다를 시원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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