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4)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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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4)

귀남이가 없으니까 대를 받아서 니가 끈 노릇한다 안캤더나. 걔도 참 많이 변했을 거다. 바람에 가랑잎 구르듯이 산도 설고 물도 설고 공기조차 낯선 곳에서 떠돌아 다녔으니 얼마나 망가졌겠어. 그 환경에도 온전하다면 그게 오리려 이상하지. 소문을 조금 듣기는 했는데 늬들도 참 속상하겠다. 남들은 외국에서 떡하니 자리 잡아놓고 초청 이민이니 뭐니 가족들 불러서 호강도 시켜준다던만-. 귀남이 그게 그리 말썽이라며? 왜 그렇게 쳐다보냐? 소문 다 났는데 뭐 숨기고 자시고 할게 뭐있어. 딱 까놓고 말해서 네 자식도 아니고, 네가 교육을 시킨 것도 아니고, 난 늬들 이제 욕 안한다. 생각하면 불쌍하지. 왜 하나같이 그리 안 풀리노 말이다. 하긴 호남이가 술집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새아파트 단지에다 땅도 많이 샀다면서? 나도 돈깨나 만져보고 살아서 아는데 너 돈 그거 요물이다. 인생 참 불공평해 보이는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척 공평한 것 같기도 해. 돈 있는 사람은 또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고민거리가 있고 그치? 호남이랑 너랑 둘이 경우를 봐도 그렇잖아. 내가 들은 소문이 있어서 하는 소린데 호남이 보고 미리 잘 말해라. 까끌막이 있으모 내리막도 있는 건데 돈독 든 사람들치고 온전하게 잘 사는 거 못 봤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가하면 호남이 그거 돈 잘 번다는 칭찬도 해주고 싶고 또 호남이한테 돈 받아쓰는 네 처지 비관할까봐 걱정도 돼서 하는 소리야.“

듣고 있던 양지는 오지랖 넓게 나오는 명자의 말에 발끈 화를 내며 말을 잘랐다.

”내가 호남이한테 용돈 받아쓴다고 누가 그랬어? 여기가 내 직장이고 꼬박꼬박 월급 받아서 저축도 하고 있는데. 우리보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몰아붙이지 마. 언니네 보다 돈이 없다고 생각마저 가난하지는 않은께.“

”야야, 와 갑자기 썽은 내고 그라노. 사람 무안하게.“

명자도 변죽만 는 나이든 여자다. 양지가 원하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걱정해주는 척 원한다면 무슨 도움이라도 줄 것처럼 제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곳을 건드려보고 있다. 양지는 명자의 이야기를 흘려듣는다. 짜증스러운 깐으로 하면, 아니 예전의 자신이라면 벌써 등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양지는 자신의 변한 모습을 명자의 수다로 하여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것은 좋은 말로 세상을 그 만큼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임과 동시에 강퍅하기 이를 데 없던 성격의 풀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한 마디로 숙성해진 주제파악의 다른 모습이다.

다행스럽게도 명자가 사무실에 있는 동안 귀남은 하루에 몇 번씩 양지가 있는 사무실로 오던 걸음을 뚝 끊었다. 멀건 시선으로 천장의 얼룩이나 바라보면서 방안에 있을 것이건만 양지는 명자의 호기심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귀남을 부르지도 귀남이가 방에 있을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얘는 어디를 이렇게 나돌아 다니는 거냐? 또 시내 호남이한테 간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하다가 명자는 아쉬운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잊고 간 게 있다며 되돌아와서 족보에 관한 이야기라도 다시 꺼내지 않을까 싶었지만 되돌아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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