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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폐기된 공공건축물의 화려한 부활타임머신 타고 떠나는 군산 역사여행
정희성  |  raggi@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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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4  23: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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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마타데로 아트지구
<2>영화사와 맥주 양조장의 변신
<3>고흐에서 마네까지…미술관이 된 역사<驛舍>
<4>‘보존’ 새로운 가치를 만들다
<5>군산의 랜드마크, 근대문화지구

전북 군산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1899년 5월 개항 후 일제강점기 동안 미곡 수탈의 창구 역할을 했던 군산은 요즘 ‘근대역사교육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아픈 역사적 흔적을 부수거나 지워버리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특한 지역 관광자원으로 만든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군산은 1996년부터 군산시청을 비롯해 법원, 검찰청이 하나 둘씩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타 지자체들처럼 원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

이때부터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군산시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던 차에 2008년에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문화재생공모사업을 실시했고 군산시는 ‘근대산업유산벨트화사업안’을 제출해 1위로 선정됐다.

100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한 시는 ‘원도심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징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심했고 군산항 일대에 방치돼 있던 근대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해 관광자원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군산시 해망동(장미동 내항 일원) 근대역사거리에 가면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건축관)과 옛 일본 18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미술관), 옛 군산세관(관세 박물관) 등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반대도 있었다. 일본식 건물을 허물지 않고 활용하는 것에 정서적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2002년에 ‘등록문화재법’이 만들어지며 근대 문화유산을 관리한다는 개념이 도입돼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사업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는(구)조선은행 군산지점 옛 모습.
   
▲ 현재 군산 근대건축관 모습.



군산 근대건축관(등록문화재 374호)으로 재탄생한 (구)조선은행 군산지점은 1922년에 지어졌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2층 건물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으로 설립돼 한국은행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을사늑약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광복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면서 군산 상권을 장악하는데 한몫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1981년 개인 소유로 넘어가 예식장, 유흥주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0년 화재 후 방치됐다 2008년 군산시에서 매입했으며 이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군산시는 건물 보수와 주변 정비를 마치고 2013년 군산 근대건축관을 개관했다. 건축관은 일제강점기 군산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근대 군산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로비공간’과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 등 유물이 전시된 ‘금고실’, 경술국치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꾸며진 ‘지점장실’, 근대 군산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응접실’로 구성됐다.

   
▲ 군산 근대미술관 현재 모습.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18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됐다.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구)일본18은행 군산지점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1870년 나가사키의 상인들이 중심이 돼 설립됐다. 나가사키가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자 1877년 9월 일본의 18번째 국립은행으로 변경됐다. (구)18은행 군산지점은 1907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비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 조선에서 일곱 번째 지점으로 설립됐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지어진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광복 후 대한통운 지점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08년에 등록문화재 제372호로 등록됐으며 보수·복원 과정을 거쳐 2013년 개관했다. ‘본관’에는 군산과 전북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분기별로 전시하고 있으며 ‘금고동’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기념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군산세관은 1908년 지어졌다. 당시에는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 한국은행 본점, 서울역사와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지금은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1908년에 지어진 (구)군산세관 모습.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인 무역 회사였던 (구)미즈상사는 미즈커피로 바뀌었다. 당시 미즈상사는 일본에서 식료품과 잡화를 수입·판매했다. 한 때 은행건물로도 사용됐다. 해방 이후 검역소로 사용됐으며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정면에 위치해 있던 건물을 이전, 보수·복원해 현재 북카페로 활용하고 있다.

근대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자원화는 군산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숫자는 유료로 운영되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입장객 수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시는 2012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찾는 인원이 늘어나자 이듬해부터 유료화했다. 2013년에 22만명을 시작으로 2014년 48만명, 2015년 82만명, 2016년 102만명으로 급증했다.

김중규 군산시 근대역사박물관 운영계장은 “군산은 근대기 모습을 볼 수 있는 특화된 공간이자 빼앗긴 시대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장소”라며 “건물 매입과 리모델링 예산 마련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직접 매입을 한 것도 있는 반면 조선은행 군산지점의 경우 시 부지와 물물교환을 했고 보수 예산은 문화재청에서 지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사업추진의 한계점과 부작용도 솔직히 밝혔다. 김 계장은 “무엇보다 성공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관(官)이 주도하고 있다”며 “또 원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지가(地價) 상승이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개발전 보다 땅값이 몇 배가 뛰어 향후 부지 매입 등 시의 추가 사업 추진에 부담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향후 계획에서 대해서는 “조선사람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조선인촌(村)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어떤 사업이든, 성공을 위해서는 단체장의 강력한 의지와 연속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희성기자

   
▲ 군산 근대건축관 앞에 그려진 벽화 모습. 일제 강점기 시절 모습을 담아냈다.

근대산업유산벨트화사업이란

군산시 장미동(현 해망로)에 위치한 (구) 조선은행, (구)18은행, (구)군산세관, (구)미즈상사, 장미공연장·갤러리,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등 6개 거점을 중심으로 문화적 인프라를 조성해 원도심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근대기 식민지배의 고통을 미래세대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근대역사 교육도시 조성사업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을 리모텔링한 군산 근대건축관 내부
군산 근대건축관 내부 1층 로비공간과 2층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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