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8)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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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8)

“고향이 그리워도는 요즘 어때?”

“몰라, 요즘은 이상하게 잠잠해. 물가에 앉혀놓은 것 같다는 어른들 말이 어쩜 그대로 실감 나는지. 암튼 병원에 갈 때는 셋이 같이 가얄 거잖아.”

“언니 정말 삐쳤나보네. 자기가 나서서 다 처리해야 되는데 내가 월권했다고.”

“삐치기는,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고 그 다음 사람은 따라가게 돼있는 게 당연한 건데 뭐.”

“언니한테만 너무 의존하는 것 같애서. 성가시는 일도 나눠서 해결하고 싶었고.”

“셈 빠지는 그런 소리 그만하자.”

호남이 뭐라고 해명을 하든 배제되는 이유를 양지는 잘 알고 있다. 양지는 애써 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호남의 방을 나섰다.

“잠깐.”

전화를 받으면서 호남이 손짓으로 양지를 멈춰 세웠다.

“압지 출현이란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방문에 대한 의문으로 뜨악한 시선을 주고받는 데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아버지가 들어왔다.

양지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며 호남이 서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정했다. 생각보다 신수가 훤한 아버지, 입성도 깨끗하고 검버섯이 성성한 거친 피부의 얼굴에도 전에 없이 윤기가 도는 것이 마치 다른 환경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멀끔하게 낯설어 보인다. 양지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호남이도 어정쩡한 표정으로 얼핏 눈길을 맞추었다. 어색해하는 딸들을 둘러 본 아버지가 손에 들고 온 쇼핑백을 먼저 내밀면서 말을 걸었다.

“애비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와 그리 빤히들 보노? 이거나 주고 갈가꼬 왔다. 받아라.”

“이게 뭔데, 선물이라도 되는 것 같네?”

호남은 꾸러미를 들여다보는 대신 비아냥거림이 섞인 투로 살짝 양지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달갑잖은 표시를 했다.

“몸에 하도 좋다케서 둘이 묵으라꼬 샀는데 모르겠다. 엔간히 까탈스런 것들이 돼야 말이지.”

“참 별일도 다 있네. 난 보약같은 거 필요없는데.”

“그라모 필요한 사람 묵으모 될 거 아이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달갑잖지만 일부러 가져왔다니 무시못하는 눈길로 꾸러미 안을 들여다보던 호남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다. 그리곤 찡그린 미간을 풀지도 않고 아버지를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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