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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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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2  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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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1)

27

영문 모를 안개 속이다. 수면 위로 날숨을 쉬는 수영 선수의 머리처럼 소떼들의 머리가 그 운무 위로 떠올라 어디론가 둥둥 떠가고 있었다. 양지가 그 광경을 알고 있는 것은 어느 커다란 소 머리위에 자신이 앉아서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장관인 것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피리소리들이 그녀의 춤사위를 더욱 신나게 부추기고 있는데 그녀의 뒤로는 마치 구름 무리처럼 뭉게뭉게 이상한 행렬을 지은 아이들 무리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은 누구이며 저 아이들은 왜 피리를 불며 따르고 있는가.

이게 뭐람. 땀에 흠씬 젖은 목덜미를 닦으면서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 어우름에서 초침이 깜빡 거리고 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사위가 잠든 적막의 평화를 뒤집는 생뚱맞은 폭거. 화재가 났다거나 홍수가 났으니 대피하라는 긴급 정보일지도 모른다. 대매에 이마 터지는 가격을 당한 듯한 공포와 오싹한 전율이 끼쳤다. 졸지에 결박까지 당한 채 흉기의 쇳물냄새가 코앞에서 뻗쳐오는 시퍼른 강도의 흉기를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암흑 저쪽의 찬바람으로 이마에는 살얼음이 돌았다. 좀 전의 그 꿈은 흉몽이었던가. 엉겁결에 전화를 받은 양지는 어이없는 놀라움과 불쾌감으로 전화기를 던져버릴 뻔했다. 귀신의 목소리처럼 쓰윽 들려 온 아버지의 목소리는 질문조차 황당했다.

“지끔 그게 뭔 일이 있는 건 아이쟤?”

뜬금없는 통화에다 질문조차 얄궂었다. 요즘더러 얼결에 아버지라는 호칭을 입에 올렸더니 관계망이 회복된 것으로 착각한 아버지가 다시 또 딸들의 머리꼭지를 조종하려는 수작을 보이는 거라 단정한 순간 숨결부터 끓어올랐다. 이 야심한 밤에 성스럽기를 기대하는 여명을 찢어발기는 마귀의 발톱질이란 말이냐.

양지는 느리고 깊게 모은 침을 삼키고 난 뒤 객지 생활 때처럼 가슴에 품고 있는 방범용 흉기를 날카롭게 사용했다.

“일은 무슨 일, 그것 물어볼라꼬, 지금이 몇 신데 전화를 하고 그랍니꺼.”

“어데 다친 데라도 있는 걸 숭쿳고 있는 건 아이쟤?”

“꼬박꼬박 삼시 세끼 밥 잘 챙기서 배터지게 묵고 잠도 잘 뒤비잔께 걱정 말고 전화 끊어이소.”

“그라모 됐다.”

한숨 같은 입맛을 쩝쩝 다시는 소리가 공중전화기 걸리는 소리와 함께 차단되었다. 새벽잠도 싹쓸이 날아가 버렸다. 양지는 제 속에 박혀있는 녹슨 못 같은 앙원이 잠시 묻혔다가 돋아나는 독버섯같이 아직도 제 가슴에 존재해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든 저렇든 미숙하던 시절의 관습과 이상의 빗나간 행위였는데, 아직도 그 어둠속의 악령을 품고 살다니……. 스스로가 못마땅할 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시커멓게 멍들고 곪은 상처에서 고름은 흐르고 내상을 치유시킬 명쾌한 선약은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상태다.

“어떤 미친 인간이 밤중을 모리고 전화질을 하고 그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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