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 오이를 싫어하는 모임
안지산(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대학생칼럼] 오이를 싫어하는 모임
안지산(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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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름철 별미 냉면 위에 가지런히 놓인 오이 사진이 올라오자 10만 명이 분통을 터트리며 ‘오자이크(오이에 모자이크를 하여 가리라는 뜻)’를 요구했다. 이들 10만 명은 오이를 싫어하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싫모)’ 회원들이었다. 오싫모 페이지를 만든 운영자에 따르면, 오이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어느새 회원 수가 늘어 1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오싫모 회원들은 오이를 몹시 싫어하는데, 이는 특정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오이 맛이나 향을 다른 사람보다 1000배 더 쓰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이혐오증이 없는 사람들은 오싫모 회원이 ‘오이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편식을 하는 것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오이를 못 먹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오이를 권하며 오이 사진을 마구 보내기도 하는데 오싫모 회원들은 이런 식의 오이 테러를 하는 사람들을 두고 ‘오이 나치’라고 부른다. 오싫모 회원들은 오이 나치들의 공격에 취향을 존중해달라며 오이 테러를 그만둘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연만 보면 ‘오싫모’ 단체가 귀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세상에는 ‘오싫모’처럼 각자의 취향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동성애를 추구하는 모임이 버젓이 온라인상에 들어섰다면 과연 대중들은 그마저 귀엽게 봤을까 의문이 든다.

자신과 다른 성향을 지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오싫모 페이지의 대문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세상에는 우리처럼 오이를 싫어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만 우리를 억누르고 지우려 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숨어 지내라며 우리를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았습니다. 나만 오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갈라놓았고, 우리는 그냥 조용히 파편화되어 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뿐입니다’

‘오싫모’를 배척하는 ‘오이 나치’가 그랬듯 우리는 ‘다름’에 대해 몹시 각박한 태도를 취한다. 타인의 다양한 취향이 존중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의 취향을 존중하듯 타인의 취향도 존중해주는 인식이 점진적으로 자리잡아가길 바란다.


안지산(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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