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2)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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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2)

부스스 눈만 뜨고 보면서 귀남이 참견을 했으나 양지는 그가 누구인지 친절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잠을 놓친 시간 내내 혼자 생각에 빠졌다. 나는 악령으로 조종되는 인간이었던가. 그래서 다른 자매들에 비해 키도 작고 몸도 야위었던지 모른다. 자조의식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두 손바닥에 화장기 없는 피부의 까칠함만 만져졌다. 다른 집 딸들도 나처럼 이런 모진 품성으로 제 부모와 형제를 대하는가, 자신을 반성해 볼 때도 있기는 했다. 치유 불가능한 골병이 심신의 구석구석까지 뿌리내려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을 양지는 안다. 부모와 자식 간이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 간간이 그럴 때도 있지만 그때뿐인 것도 알았다.

호남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아침상을 채 물리지도 않았을 때였다.

“너 바꾸란다.”

또 혼자 따돌림 당한다는 구겨진 인상을 지은 귀남이 책상 위의 수화기를 길게 늘여주었다.

“누군데?”

“누긴 누라, 최 사장인가 그 년 아이모 이 시간에 누?”

수화기를 귀에 대자말자 호남의 기막히고 신난다는 식의 웃음이 귓전을 때리며 감고 들었다.

“새벽에 아부지 전화 받았쟤? 안 놀랬더나? 마이 놀랬쟤?”

“너한테도 전화 왔어?”

“아니 방금 전화가 왔는데, 아이 우스워 죽겠다. 언니 니가 컴컴한 숲 속에서 괴한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들한테 쫒기다가 결국은 칼에 찔려 죽는 꿈을 꿨단다.”

“피이, 언제부터 그런 끔찍한 관심을 품고 살아서…….”

아, 그래서였구나, 첫새벽 전화에 대한 의혹은 풀렸지만 양지는 픽 순간적인 비웃음을 날렸다.

“언니 니도 가만히 보모 참 뒤끝이 심하다. 그래도 우리 중에서 아부지가 언니 니 걱정을 제일 많이 한다. 몸은 꼬쟁이겉이 얘비갖고 강단으로 되는 것도 아닌데 목장 일까지 책임을 떠안았으니, 아까도 그라고 전화 끊었다. 언니야 니는 아직도 아부지란 사람을 그리 모리나. 아부지는 절대 남한테 친절하게 이유 같은 거 설명 안한다. 그런께 꿈 이야기도 나한테 했지.”

“너하고 나하고 똑같은 딸인데 넌 어쩜 그러니. 난 아무래도 안 되는데.”

걸걸한 음성으로 호남이 큭큭 웃었다.

“그건 언니 니 성질로는 죽었다 깨나도 안 될걸. 무식하모 용감하다꼬, 나는 앞뒤를 안 재는 무식꾼 아이가. 날 반 쯤 남정네라꼬 언니 니가 그랬고. 그러니까 언니보다는 충격을 조금 덜 받는 것이고. 밉지만 우짤끼고, 늙은 소처럼 곰국을 끼리 묵을 수도 없는 노인을 두고. 퉤퉤, 누리고 싱겁어서 진국도 맛있는 진국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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