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성인지 감수성
강문순(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여성칼럼] 성인지 감수성
강문순(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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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성폭력 관련 보도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반성폭력 운동이 시작된 지 30여년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의 발생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그 30여년의 반성폭력운동의 성과는 미디어에 성폭력 관련보도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작년부터 올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성폭력 관련 보도는 예전의 끔찍하고 우발적인 것으로 묘사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의 공간에서 별다른 의식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성폭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가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변화된 보도 형태는 성폭력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거나 성폭력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소수의 개인이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라, 또한 어쩌다 발생하는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서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상의 범죄라는 것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는 결국 성폭력이 계속되는 것은 범죄자 개인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무딘 감수성,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가능하게 한다.

더구나 여성피해자가 대다수인 성폭력이나 여성혐오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가 크다. 이런 문제의 경우,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데 막상 가해자는 별것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폭력에 있어 피해자는 여성, 가해자는 남성이라고 딱 나누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성폭력과 여성혐오에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 간 인식의 차이는 그대로 여성과 남성의 시각 차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남성의 시각이 우세하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런 시각 차이 역시 우리 사회 전반의 성폭력에 대한 무딘 감수성, 잘못된 인식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본다.

여성가족부에서는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전 국민에게 확대하는 사업을 시행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성인지 감수성(관점)’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역지사지’의 태도를 강조한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문제나 갈등을 풀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지금과 같이 성폭력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가 크고, 여성과 남성의 처지가 다른 상황에서 역지사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용어이다. 즉 ‘성인지 감수성’이란 사회적인 정책이나 개인 간의 관계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나 말, 행동이 성이 다른(이성의)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말한다.

많은 여성들과 만나 성폭력에 대한이야기를 하다보면,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여성에게 크든 작든 성폭력의 경험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때의 고통스러웠던 느낌, 분노가 차올랐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해낸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대다수의 여성들과 그런 경험이 거의 없는 남성들은 성폭력에 대한 시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성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시각도 다를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이러한 차이를 감안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차이에 대한 고려는 비단 성폭력뿐만 아니라 정책이나 개인 간의 관계 맺음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성인지감수성을 높이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통해 좀 더 안전하고 밝은 2018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문순(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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