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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경남일보 기획] 천년도시 진주의향기 <15>구수하고 정감어린 에나 진주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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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8  22: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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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최전선에서 복무한 진주 출신 보병 소대장이 있었다. 전투가 막 벌어져 적진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소대장은 즉각 소대원들에게 “수구리!(=수그려!)”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소대원들이 어리둥절하다 절반이 총알받이가 되었다. 잠시 잠잠하다 싶었는데 다시 총알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황급히 “아까멘키로!(=아까처럼!)”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끝내 아까처럼 몸을 수그리란 말을 알아채지 못한 소대원들이 희생되고 진주와 진주 가근방 출신 소대원들만 살아남았다는 우스갯소리인데 지금도 종종 회자되고 있다.

사투리란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다. 쓰는 지역에 따라 갈래를 이룬다 해서 방언(方言)이라고도 한다. 진주 사투리는 진주에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온 본토박이들이 쓰는 토박이말이다.

 
   
 

◇자연 환경과 역사적 배경


진주는 시의 서북부로 백두대간인 덕유산과 지리산의 지맥이 흘러 시 경계를 두르며 산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덕유산과 지리산에서 발원한 남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며 기름진 평지를 이루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삼한시대 변진의 고순시국(古淳是國)으로, 가야시대에는 고령가야로 비정되며, 삼국시대에는 어느 때는 신라 세력권에, 또 백제 세력권에 편입되기도 했다가 통일 신라에 이르러 아홉 주(州)의 하나가 되어 나라 안의 큰 고을로 성장하는 바탕이 되면서 역대 왕조를 통해 목(牧)으로, 또 경상우도 병영으로,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로 지방 행정 군사 문화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진주 말은 가야와 백제를 거쳐 신라 말을 이어 오랜 세월 변화를 겪으며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진주 사투리는 경상도 방언의 한 갈래인데 경상도 방언은 동남 방언으로 분류된다. 알타이어 공통조어(共通祖語)로부터 갈라져 나온 한어계(韓語系)는 마한 변한 진한어로, 이들은 백제어 가야어 신라어로 발전되었으며, 서로 언어적 성격이 가까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 방언은 가야어와 신라어의 기층 언어였던 변한어와 진한어를 중심으로 발달된 방언이다. 곧 변한어에 뿌리를 둔 경상남도 방언과 진한어에 뿌리를 둔 경상북도 방언이 비슷한 데서 미뤄볼 수 있는 것이다.

신라어는 6세기에 가야를 통합함으로써 변한어를 유입시켜 그 언어 영역을 넓혔으며, 이후 7세기에는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마한어까지 유입시켰다. 이로써 한반도 언어는 신라어를 중심으로 통합되었다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부터 중부 지역 언어가 중심축이 됨에 따라 신라어와 백제어를 모태로 하는 지역의 말이 이른바 사투리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을 몇 개의 방언 권역으로 나누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행정구역과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며, 칼로 베듯이 경계를 확연하게 구분해 그을 수도 없다. 지리적으로 이웃해 있는 지역은 서로 말이 닮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경남 말과 경북 말이 비슷하지만 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은 경남 지역 대부분이 신라에 통합되기 전에 가야의 옛 땅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고, 같은 경남 방언도 동부 중부 서부 방언으로 나누는데 진주 방언은 서부 경남 방언에 속한다. 서부 경남지역은 신라시대 이래 대체로 진주 강역으로 같은 방언권이지만 지역마다 조금씩 말맛을 달리 내고 있다.

◇진주 사투리의 특징적 어휘들

진주의 가장 대표적인 토박이말은 ‘에나(=참말, 정말, 진짜)’를 꼽을 수 있다. ‘에나가’라고 하면 ‘참말이냐’, ‘정말이냐’, ‘진짜냐’라며 묻는 말이 되고, ‘에나다’라고 하면 판정하는 말이 된다. 이런 말을 억지로 표준말에 꿰맞추면 고유의 말맛이 영 달라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진주의 거리에서는 ‘에나’가 붙은 가게 이름을 더러 볼 수가 있고, 혁신도시에는 거리 이름에 ‘에나로(路)’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진주성을 기점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읽으며 걸을 수 있는 진주 에나 길 1.2도 있다. 에나 길 1은 진주의 진산인 비봉산과 선학산 시청 남강변을 걷는 길이고, 에나 길 2는 천수교 망진산 가좌산을 돌아 진양교에 이르는 길이다.

진주의 색깔이 뚜렷한 ‘기다(=맞다, 됐다, 그것이다)’, ‘기가(=맞느냐, 됐느냐, 그것이냐)’, ‘하모(=아무렴, 그래)’, ‘한거석(=가뜩)’, ‘칼클타(=깨끗하다)’, ‘쑥쑥다(=더럽다, 지저분하다)’, ‘문때다(=문지르다)’, ‘쎄리다(=때리다)’, ‘상구(=아주, 전혀)’, ‘쎄때(=열쇠)’ 등도 다른 지방에서는 잘 듣기 어려운 속절없는 진주 사투리이다.

‘쿠다’라는 말도 독특한데 주로 “글 쿠다”로 쓴다. ‘그리 말하다’를 줄인 말로진주 사람들의 입에 익어 있다. “니가 글 쿤깨 내가 글 쿠제, 니가 안 글 쿠모 내가 글 쿠것나(=네가 그리 말하니까 내가 그리 말하지, 네가 그리 말하지 않으면 내가 그리 말 하겠느냐)”라고 한다. 이처럼 음절을 줄여 쓰는 것이다. 흔히 “글마 좀 멀 캐라”도 표준말로 바꾸면 “그 놈의 아이 좀 나무라라”이다. 이때 ‘멀 캐라’는 ‘뭐라고 말하라’를 줄인 말이지만 ‘꾸중하다’라는 뜻도 있다. 진주에서는 ‘글 쿤다(=그리 말한다)’, ‘글 쿠더라(=그리 말하더라)’, ‘멀 쿤다(=나무란다, 꾸중한다)’라고 하지만 같은 경상도라도 딴 지역에서는 주로 ‘카다’, ‘칸다’, ‘카더라’로 표현한다.

진주 말에는 이와 같이 줄인 말이 많다. 예를 들면 ‘가 가다(=가져가다)’, ‘가 오다(=가져오다)’, ‘껠베이(=게으름뱅이)’, ‘뚤맞다(=두들겨 맞다)’, ‘뚤패다(=두들겨 패다)’, ‘일키(=이렇게)’, ‘절키(=저렇게)’, ‘붑잖다(부럽지 않다)’, ‘첼보다(=쳐다보다)’ 등으로 축약해서 쓰는 것이다.

말하는 자리에 따라 부드럽게 에두르는 말도 있다. 용례를 들면 “엔가이 머석했이모 거석했을 낀대 언캉 머석한깨 거석할 수 있어야제”라는 말로 ‘머석’과 ‘거석’을 섞은 말인데, 말맛이 덜 나지만 표준말로 바꾸면 “어지간히 무엇했으면 생각해봤을 텐데 워낙 무엇 하니까 미처 생각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다. 직설적으로 하면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는 자리에서 어색하지 않게 쓰는 말이다.

진주 토박이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문디’라는 말이 있다. 표준말인 ‘문둥이’에서 이응이 탈락된 말이지만, 진주에서는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는 사이에 “야 이 문디야!”, “문디 아이가”, “문디 새끼 아이가”라는 식으로 무간하게 쓴다. 또 “문디 겉이 됐다”는 등 좋고 궂음에 관계없이 두루 쓰는 말이다. 검증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진주는 예로부터 경상도의 큰 고을로 인물이 많기로 훌륭한 스승 문하에서 배운 아이란 뜻의 문 문(門)자에 아이 동(童)자를 쓴 ‘문동(文童)’이란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즉 ‘궁덩이’를 ‘궁디’로 하듯 발음되지 아니하는 묵음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금덩이’를 ‘금띠’, ‘돌덩이’를 ‘돌띠’, ‘달덩이’를 ‘달띠’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것이다.

또 진주 말의 특징은 이중 모음을 잘 발음하지 못한다. ‘달걀’을 ‘달갈’, ‘편지’를 ‘펜지’, ‘형님’을 ‘헹님’, ‘효자’를 ‘호자’, ‘외국’을 ‘에국’, ‘투표’를 ‘투포’, ‘과자’를 ‘까자’, ‘궤짝’을 ‘게짝’, ‘화투’를 ‘하토’, ‘왜’를 ‘와’, ‘쥐’를 ‘지’라고 발음한다.

또한 발음을 쉽게 하려고 기역을 지읒으로 말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기대다, 기둥, 기름, 길, 김, 김치, 깊다, 겨누다, 견디다, 겸상, 곁방살이 등을 지대다, 지둥, 지름, 질, 짐, 짐치, 지푸다, 전주다, 전디다, 점상, 젙방살이로 말하는데 발음을 편하게 하려는 데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종결어미의 ‘다’를 ‘더’로, ‘까’를 ‘꺼’로 말한다. “갑니다”는 “갑니더”로, “갑시다”는 “가입시더”로, “갑니까”는 “갑니꺼”로 발음한다.

사투리의 생명력은 어느 방언권 할 것 없이 도시보다 시골이 더 질기다. 같은 지역이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생활언어 자체가 사투리다. 지금도 자주 듣는 ‘싸개라’란 말이 있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하기 힘든 말 중의 하나이다. 흔히 “아이구 싸개라”라고 하는데, 듣는 자리에 따라 ‘많다’, ‘대견하다’, ‘고맙다’라는 말맛을 내고, 비슷한 뜻의 ‘엄첩다’도 “아이구 엄첩해라”라고 하며 두루 쓰이며 ‘엄청스럽다’, ‘장하다’라는 말맛을 보태고 있지만, 표준어에서는 딱 들어맞는 어휘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시골말의 ‘정지’가 ‘부엌’이고, ‘부석’이 ‘아궁이’이며, ‘부작떼이’가 ‘부지깽이’이며, ‘소풀’ 또는 ‘정구지’가 ‘부추’인 줄은 대개 알지만, 옛날 땅을 다질 때 쓰는 ‘달구’를 ‘망깨’라 하고, ‘징검다리’를 ‘노디’, ‘수수께끼’를 ‘수리지끼’라고 하면 진주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이 알아 들을까 싶다. ‘삐가리통’이나 ‘달구까리’, ‘달구통’은 다 표준말의 크고 작은 ‘어리’이고, 간짓대를 걸친 ‘작수발(=작사리)’, 온갖 옷을 주렁주렁 걸었던 방안의 ‘줄대불(=횃대)’ 등은 실물과 함께 방언의 울타리마저 벗어나 사라져가고 있다.

놀이도 봄날 뒷동산에 올라 ‘삐삐(=삘기)’를 뽑아 먹고, 갓 물오른 소나무가지를 꺾어 ‘송구(=송기)’를 벗겨 먹으며 ‘뻔덕(=버덩)’에서 ‘깨금뛰기(=앙감질)’를 한 것이나 냇가에서 ‘빤대치기(=물수제비뜨기)’를 하며 놀고, 지게에 ‘옹구발(=발채)’를 얹어 또 땔감으로 ‘갈비(솔가리)’를 검던 이야기도 옛일로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동네 사람이나 친구끼리 나누어 낸 곡물이나 돈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해 나눠 먹던 ‘데리(=도리기)’나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 말을,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 말로 서로 좋지 않게 이간질 하는 우물가의 ‘소드래(=말전주)’로 온 동네가 들썩이던 말도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잘 살려 다듬는 노력 필요

진주 사투리는 진주 사람들이 진주라는 토양에서 장구한 세월을 통해 소통하고 인정을 나누면서 삶을 든든하게 이어 온 자연 언어로서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표준어는 맞는 말이고 사투리는 틀린 말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표준말에 대한 하위개념으로 평가되면서 하대를 받아 사투리의 소멸이 방치돼 왔다.

사투리를 쓰면 지금도 촌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도 영화나 드라마 속의 조직 폭력배나 배움이 낮고 억센 성격의 사람은 특정지역 사투리를 쓰도록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고, 고전물일수록 상전은 표준말을 쓰고, 아랫사람들은 사투리를 쓰도록 설정함으로써 버젓이 신분차별을 하고 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말은 나고 자란 곳의 정체성과 정신문화가 깊이 배 있는 것이다. 사투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단순한 의사 전달의 방편이나 수단이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가교로서 지역 통합과 결속을 다지는 매개체이다.

지역 사람들의 체온과 숨결, 얼이 함씬 배 있는 사투리의 소멸은 문화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의 다양성이 무너지면 자연생태계가 위협을 받듯이 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면 긴 세월 축적해온 전통문화와 정신세계가 황폐해지는 것이다. 소수 민족어의 소멸이 이를 웅변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날 길을 잘못 들어선 어문정책과 대중매체의 발달과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사투리의 소멸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지 모르나 ‘서울말’로서는 지역마다 다른 특유의 말맛을 살려낼 수가 없다. 따라서 서울에 없는 곱고 아름다운 말을 살려내 겨레의 말살이를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장일영
▶필자약력
전 경남일보 논설위원(전 편집부국장)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
진주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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