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난감하네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 난감하네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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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국어시간이다. 별주부전으로 오늘의 단어공부를 해본다. 토끼와 자라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이 자라를 두고 토끼를 속이고 간을 빼앗으려 하는 악당이고 사기꾼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위기를 잘 넘긴 토끼 이야기도 좋지만 자라의 사정을 한번 들어보자고 아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자라만 데려와서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자라는 토끼가 누구인지 미리알고 있었을까? 그 넓은 남해 용궁에 신하는 자라 혼자뿐이었을까? 왜 자라에게 토끼를 데려오라고 시켰을까?

지우에게 슬쩍 물어본다. “지우대신은 지금 당장 김철수를 데려 오도록 하라. 용왕님이 명령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우가 발끈해 불퉁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김철수가 서울에 사는 지, 미국에 사는 지 몇 살인지 어떻게 알고 찾으러 가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표현하는 낱말을 두 단어로 표현해보자고 하니 교실안이 금새 와글와글 분분한 의견을 쏟는 시장터가 된다.

당황, 곤란, 짜증, 못해, 글쎄…다양한 단어가 쏟아진다. 아이들에게 이런 경우에 딱 어울리는 ‘난감’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난감한 상황’을 난감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난감한 자라에게 우리가 위로의 편지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자라야!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토끼를 데려오라니 난감했지. 너무 힘들면 하지 마.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교실 안은 자라에 대한 비난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며 이해와 동정으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친구와 나 사이의 작은 문제라도 넌 틀렸어 라고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었지. 그럴 때 무조건 나의 입장이나 생각만 주장 할 것이 아니라, 친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넌 틀렸어가 아니라 넌 다르구나로 바꿀 수 있고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지.”

착하다, 나쁘다. 구별하는 기준이 하나가 아니고 다양하며 지금까지 거짓말쟁이라고 욕을 먹고 있던 자라 역시 피해자였다는 사실 앞에 모두 난감해 한다. ‘그럼 누가 정말 나쁜 놈 인거야.’ 불쌍한 자라의 뒷이야기를 걱정하며 열 살의 생각이 열 한 살의 성숙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난감하네. 도망간 토끼의 간을 어찌 구한단 말인가? 용왕님의 병환은 또 어찌 고친다 말인가?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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