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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천(我川) 시조비(時調碑) 앞에서
김형진(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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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0  17: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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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지난 일요일 혼자 삼현여고 교정에 들러 산책을 즐기다가 아천 최재호 선생의 시조비 앞에 섰다. 비 제막식에도 참석했던지라 처음 보는 비는 아니었으나 아천의 영향으로 등단해 창작과 학생지도로 오늘에 이르게 된 필자로서는 선생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고 감회에 젖었다.

이 비에 새겨진 세 수로 이루어진 시조 ‘석굴암’을 소개하면 /토함산 잦은 고개 돌아보면 쪽빛 동해 / 낙락한 장송등걸 다래넝쿨 휘감기고 / 다람쥐 자로 앞질러 발을 멎게 하여라. - 2,3수 생략 -

의령 출신 이수인작곡가가 1976년 마산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서점에서 구입한 진주 삼현여고 교장인 아천의 시조집 수록 작품들 중 ‘석굴암’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을 느껴 훗날 작곡한 것이 유명한 가곡 ‘석굴암’인 것이다.

필자가 시조비 앞에서 떠 올린 또 다른 시조시인은 기리 이명길 박사이다. 1950년대부터 아천과 함께 진주를 중심으로 시조단과 개천예술제를 이끌던 시조시인이다. 특히 대학 교수로서 초등학교 부터의 시조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어린이 시조 첫걸음’이란 지도서를 발간하고 직접 초등학교를 순회하며 지도에 임하기도 했다. 순수 민족문학 시조의 장래를 위한 문인들의 나아갈 바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지난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시조 초, 중등부가 사라져 운문부로 합쳐진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진정한 민족의 고유 문학 장르를 예술제전에서 참가자가 적다는 이유로 홀대(忽待)했다는 사안에 1950년대부터 진주에서 활동하신 원로 시조시인 아천 최재호, 기리 이명길 선생을 생각했었다. 개천예술제 기획 운영을 잘 하고자 그래야했거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순수 민족문학에 대한 천대(賤待)로 여겨져 서운함을 금할 길 없었다. 전국적으로 드물게 시부와 시조부가 공존하던 지난날의 개천예술제가 필자는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생각했기에 더욱 그렇다.

만약 전기한 두 어른이 살아계셨다면 이런 사안은 거론조차 없었을 거라는 생각과 아울러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조시인들의 각성과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이 지금이라는 생각에 우리 지역의 아천 최재호, 기리 이명길선생을 떠올려 마음을 달래 보았다.

가까운 이웃 일본에서는 그들의 민족 문학을 사랑하는 의미로 백일장 등 행사의 맨 앞에 ‘와카’(일본 전통시)부터 시상하는 정성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일이 아닐까?

 

김형진(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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