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7)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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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7)

물론 잘 있을 것으로 믿는 마음이 더 컸음이다. 그렇지만 결혼할 뻔했던 현태와 헤어진 것도 자매들, 특히 홀대받는 딸들에 대한 저항을 바로 일깨워 준 수연에 대한 배려가 느슨해져 있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다.

“접때는 이모 올 줄 알고 어둘 때까지 화단 가에 앉아 있다가 엄마한테 혼났어. 이모 많이 보고 싶었어.”

새삼스러운 동작으로 감겨오면서 아이는 다시 갈급하게 애정 어린 손길을 바라고 있다. 양지는 가만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모가 미안해.”

“그런 말은 소용없어. 수연이는 이모 말 잘 듣고 잘 참을 수 있거든. 근데 언제 집지어요?”

“집?”

“미국이모가 그랬어. 집 지으면 나 데리고 같이 살거라고.”

수연이 뒤에 서 있는 귀남에게로 고개를 돌려 동의를 구했다. 양지는 얼굴을 찌푸리며 힐책의 눈길을 귀남에게로 보냈다. 미리 말을 맞춰놓지 않은 잘못이다. 아직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없는데, 더구나 호남의 성격상 그 일이 언제 진척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며, 설령 순조롭게 지금 당장 일이 진행된다 해도 근 일 년을 기다려야 합가할 수 있을 텐데 그 기간을 기다리는 동안 애달아할 아이의 조바심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싶어 양지는 미리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짤라꼬 애한테 시키지도 않은 말을 먼저 했노.”

양지가 나무라자 귀남이 바르르 떨면서 대거리를 했다.

“넌 참 이상한 인간인거 모르지. 누군가, 아니 이모들이 날 데리러 올 거라고 기다리는 동안 애가 미리 좀 행복하면 안 돼? 하긴 네가 언제 정에 굶주려 봤어?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세상 넓은 공간에 햇살 한줌 같은 따뜻함이라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게 뭐야.”

입을 삐죽거리면서 이죽거리는 귀남의 태도가 찍자를 걸듯이 불안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슬그머니 양지에게서 거리를 둔 수연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분간 안 가는 아군을 식별하느라 긴장된 얼굴이다.

“틀리는 말은 아닌데, 애 보는 데서 왜 이래.”

“그래 너 잘난 줄 아는데 너무 도도하고 메말라서 싫어야 나는.”

“내가 뭐 그렇게 도도하다고 호남이가 하는 말 언니도 같이하네.”

“넌 그래. 누구한테든 약점 안 보일려고 감추고 감추고 또 감추고.”

“누구는 뭐 자기 결점을 남한테 일부러 까발리나?”

양지는 피식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감추고 흘려버린다. 양지 자신은 많이 살가워지고 수더분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귀남은 언제나 양지를 인정머리 없다는 핀잔으로 몰아세운다. 언젠가 ‘언니가 그런 점 뭐 좀 없지는 않지’ 장난삼아 호남이가 동의한 뒤로는 아예 정설로 굳혀놓고 귀남은 조금만 심사가 뒤틀리면 그쪽으로 양지를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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