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8)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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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8)

양지는 부드럽게 편 얼굴 근육에다 미소까지 지어 올리면서 수연의 오른팔을 끌어 잡았다.

“미국 이모 말이 다 맞아. 사장 이모가 큰 집을 지어서 우리 수연이랑 이모들이랑 같이 살기로 의논을 했는데 좀 더 기다려야 돼. 어른들은 일이 많아. 좀 복잡하기도 하고. 그동안 우리 수연이가 기다리기 지루할까봐 말 안했던 거야. 순간적으로 짠! 하면서 너 데려올려고 말이야. 그게 훨씬 멋지고 재미있을 같잖아?”

“집은 언제 짓는데 이모?”

“글쎄, 곧 시작은 한다는데……. 막내 이모가 알아서 하기로했는데, 막내이모가 워낙 바쁘니까 지금 곧 바로 언제부터 할 거라고 말은 못해.”

“이모는 돈도 잘 번다면서 뭐가 그리 바빠요?”

수연의 귀여운 의문에 기가 막힌 양지도 귀남이도 한꺼번에 깔깔 웃었다.

양지는 수연의 작은 손을 조몰락거리면서 말을 고른다. 어른들의 복잡한 세상을 아이는 아직 잘 모른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잘 되었다면 저 자신이 고아 아닌 고아가 되지 않았을 것도 이 아이는 모른다. 이모들이 왜 할아버지의 지청구를 받으면서 노처녀로 괴물 집단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는지 아이는 아직 알 수 없다.

“야아야, 이리와 머리나 묶자.”

귀남이가 수연의 옷깃을 끌어당기자 수연이 몸을 비틀면서 고개까지 흔든다.

“싫어, 이모한테 보여줄 거 있잖아, 내 상장 미술 대회서 받은 거.”

귀남의 손을 뿌리치는 수연의 눈동자가 아득한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아련하게 멀어졌다.

“요것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은 세냐. 지 에미가 그랬어?”

양지는 얼른 귀남을 쏘아보며 입단속을 시킨다. 싫다면서 사자갈기처럼 휘두르는 수연의 머릿결을 귀남이 홱 잡아당겼다. 파르족족해지는 인상이 차고 날카로워져 있다. 초등학생인 수연이 귀남이와 친해지기는 아직 어렵다. 그렇지만 되는 대로 방치하면 둘 사이는 더 벌어지고 말뿐이다. 양지는 서둘러서 수연의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타일렀다.

“수연아, 머리는 미국이모가 잘 묶어. 미국이모한테서 머리 먼저 묶고 상장은 그 담에 보자. 전에도 네가 받아 온 상장 미국 이모랑 사장 이모랑 둘이서 벽에 붙여놨어. 자, 어서 미국이모한테 묶어 달래라.”

“미국이모는 맨날 안고 울고 꼬집다가 또 울고 징그럽단 말이야.”

귀남은 안쓰러운 정으로 수연의 기형적인 왼팔을 아파한다.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을 어미도 없이 자란 어린 것의 장래가 어떤 위기를 맞게 될지 누구보다 마음 저려하는 것을 수연이 아직 이해할 리 없다. 세 이모가 잘 키우기로 합의했지만 귀남은 자신이 가진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기가 한 약속마저 회의적인 편이다. 귀남의 정서불안을 알리고 배려를 부탁해 놓아야 아이도 나름의 소통방식을 설정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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