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9)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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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9)

하지만 이모의 아픔을 설명하기 복잡하여 미루고 있다. 다행히 귀남은 더 이상 수연을 괴롭히지 않고 손에 들린 머리 방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아까 나왔던 방향으로 저 혼자 슬슬 걸어 가버렸다.

양지는 가볍지 않은 동작으로 쭈그려 앉아 수연이와 눈높이를 같이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수연이도 아직 어린이지? 어른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뜻을 독특하게 전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갖고 있어, 그래서 미국이모도 수연이를 꼬집거나 안고 울거나 그러는 거야. 사실은 미국이모 멋쟁이잖아.”

“그럼 미국이모도 날 좋아한다는 거야?”

“그럼. 우리 수연이 아주 잘 알아듣네.”?

“그래도 난 싫어. 무서워”

귀남이 억울하지 않게 이모가 아픈 이유까지 다 말해 버릴까하다가 양지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왜 병이 났어요? 묻는다면 응당 납득할 만한 답을 들려주어야한다. 그러나 어두운 가족사까지 공감 없이 들은 이야기로 아이는 거리감만 더 갖게 될 것이다.

“그건 우리 수연이가 미국이모한테 죄송스러워 해야 될 생각이야. 이모는 엄마 형제간인데 뭐가 무서워. 수연이 친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수연이 좀 사랑하고 돌봐달라고 미국이모를 대신 보낸 건데.”

엄마라는 말 때문인지 아이의 얼굴이 발그레 피어나다가 다시 어두워지면서 복잡한 생각으로 흔들리는 것 같다. 양지는 얼른 수연이 앞으로 웃는 얼굴을 디밀었다. 양지는 전에 이런 말로 수연을 위로했던 적이 있었다.

“수연아. 엄마는 이모들을 많이 닮았어. 웃는 눈은 나를 닮았고, 키가 크고 가늘가늘하게 예쁜 몸매는 미국이모를 닮았고, 무엇이든 열심히 부지런히 잘하는 건 사장이모를 닮았단다. 그러니까 우리 수연이 엄마는 이모들이야.”

이모들의 눈이나 코 이마 등이 제 엄마와 닮았다는 말 때문인지 아이는 늘 그리움 가득한 눈빛으로 이모들의 면면을 유심히 뜯어볼 때가 있다. 양지는 얼른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우리 수연이 상장 타 온 거 보러가자. 거기 엄마한테는 말하고 왔지?”

“아니.”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어디를 가면 간다고 어른한테 말씀드리고 와야지 얼마나 찾으실 텐데.”

“놀이터에서 노는데 이모가 와서 같이 가자고 자꾸 졸랐단 말이야.”

“이모가 거기까지 간 거야?”

“그래서 상장도 몇 개 더 있는데 가방에 있는 것만 갖고 왔어.”

“그래 알겠다. 어서 가서 전화부터 하자.”

어깨에 손을 얹고 같이 걷는데 수연의 키가 양지의 귀까지 쑥 올라와 있다. 십 년 전. 이 아이가 태어날 무렵. 양지는 언뜻 떠오르는 생각들을 서둘러서 지웠다. 그러니까 과거는 모두 견딜만했던 슬픔이었고 고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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