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0)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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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0)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망각은 그 사람을 건재하게 하는 잠재적 역량일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트문없는 기대가 없다면 오늘도 실은 힘겹다. 재미도 없다. 그저 수연이가 왔으니 수연이와의 일로 오늘을 보내는 소소한 기쁨이 있을 뿐 보장 없고 불확실한 미래는 탈출하고 싶도록 지겹다. 그러나 또 내일이면 내일의 어제는 종적 없이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방에 들어오자 수연은 이모들이 걸어놓았다는 제 상장을 올려다보며 몸을 빼또롬히 비틀고 서서 배시시 웃는다. 수연이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깜빡 좋아하는 사람은 호남이었다. 마치 제 딸 주영이의 화신을 만난 듯이 귀애하는 것은 물론 수연의 남다른 장래를 위해서는 특출한 재주를 길러주어야 한다며 신체적 약점을 고심할 필요 없는 예술분야인 것이 더 대견해서 눈물까지 질금거렸다. 저의 역량 모두를 수연이 하나 잘 기르는데 투자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비로소 삶의 활로를 찾은 듯이 돈을 더 열심히 모으는 것도 수연의 유학비와 장래 화실을 차려 줄 준비까지 연결을 시켜나갔다.

그림을 그릴 때며 상장을 받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를 수연의 입으로 들으면서 아이의 곱살스러운 숨결을 가까이 하고 있을 때는 양지도 좋았다. 이 아이마저 없다면 존재이유가 없을 정도로 얼마나 삭막했을까 싶기도 했다. 마주앉아 머리 묶어줄 준비를 하는데 수연이 먼저 입을 열어 뜻밖의 소리를 했다.

“이모.”

“응?”

하지만 얼마를 기다려도 수연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제 옷깃을 잡고 꼼지락거리면서 뜸을 들이고 있다. 무슨 다른 할 말이 있는 게 분명한 동작이었다. 양지는 아이가 스스럼없이 제 뜻을 밝힐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로 했다. 잠시 후 수연이 양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모, 저…….”

“어서 말해봐. 무슨 어려운 말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모, 저 용재오빠네 집에서 살면 안돼요?”

“용재오빠네?”

너무 뜻밖의 말이라서 양지가 반문을 하자 이번에는 제법 결기 찬 눈빛으로 양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어른스러운 말투로 수연이 덧붙였다.

“오빠랑 언니들이랑 또 동생들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참 보기 좋았어요. 이모 나도 거기서 살면 안돼요?”

잠시 보았던 이종들과 수연이 잘 어울리는 것을 보고 수연이 위탁모의 손에서 자라는 것보다 저 아이들 남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살림을 주도하는 연만한 이들에게 아이 하나가 늘어나는데 따른 부담까지 드릴 수 없어 접어두었던 터였다.

“네 뜻은 참 고맙고 예쁜 생각인데. 수연아, 이모 댁에는 가족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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