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보면 주인공 앨리스와 카드 게임의 붉은 여왕이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앨리스가 “그런데 붉은 여왕님, 정말 이상해요. 지금 우리는 아주 빨리 달리고 있는데, 우리 주변의 경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자, 붉은 여왕은 “제 자리에 남아 있고 싶으면 죽어라 달려야 해”라고 대답한다.
이제 또 한 해의 결승점이 바로 저기다. 한해 마무리를 잘하시라고 인사를 건네는 시기지만, 무엇을 마무리 하라는 건지 내게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지구 자전과 공전에 맞추어, 그렇게 정해진 대로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인데, 굳이 새해라고 이름하고 정말 새 물건처럼 대하는 일이 썩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말연시가 도통 남의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다.
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한 자리에만 있는 것 같은 나무도 바위조차도 실은 나이를 먹으며 커가고 있고 낡아가고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하루만큼씩, 한 해만큼씩 달려간다. 나는 때때로 나와 같은 세기를, 나와 같은 지구라는 공간에서 나와 같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세상 사람들과 만물들에게 동류의식을 느낄 때도 있다.
혹, 한 해 동안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도 당신만 모를 뿐 당신은 열심히 달려온 것이다. 일상이 행복이다. 어제 같은 오늘이 실은 행복한 날이다. 집밖을 나가면 시내버스도 그대로 다니고, 카톡방에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소식이 와 있고, 이웃과 친구들이 그대로 있고, 지금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있다면, 그렇게 다들 제자리에 남아 있다면 당신은 참 열심히 달려온 것이다. 올해도 참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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