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의사 가운이 검은색도 있었다고요?
최원준 (경상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객원칼럼]의사 가운이 검은색도 있었다고요?
최원준 (경상대학교병원 산부인과)
  • 경남일보
  • 승인 2017.12.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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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의사를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많은 분들이 ‘흰 가운’과 ‘청진기’를 많이 선택하곤 한다. 물론 최근 드라마의 영향으로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의사의 상징은 ‘흰 혹은 하얀 가운(white lab. coat)’이라고 필자는 생각을 한다. 길고 흰 가운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의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심벌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사는 하얀색 가운을 입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와 고름이 잔뜩 묻어 있는 한 번도 빨지 않은 듯한 긴 검은색 가운을 입었던 적도 있었다. 오늘은 의사의 가운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가운(Gown)은 중세 시대로부터 있었고 벨트나 띠 없이 헐렁하면서 길게 입는 겉옷의 한 종류로서 무릎까지 오는 것도 있고 발끝까지 오는 것도 있다. 당시에는 편하게 입으려고 만든 옷이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냥 입는 옷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중세에는 의사를 성직자들이 겸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검은 색의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료하였다고 한다. 피와 고름으로 범벅이 된 검은색 가운은 경험 많은 의사의 상징물이었고, 환자들은 그 가운을 보고 치료가 더 잘된다는 신념을 가졌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쑤상하오’가 쓴 ‘새부리 가면을 쓴 의사와 이발소 의사’라는 책에는 옛날 의사의 흥미로우며 색다른 모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의사는 까마귀 같은 가면을 쓰고 검은 색의 긴 가운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부리 모양에는 약초를 넣어 일종의 방독면 역할을 기대했고, 검은 색의 긴 가운으로 가능한 외부와 접촉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면 언제부터 의사는 흰색 가운을 입기 시작한 걸까? 흰색의 긴 가운은 1800년대 후반부터 실험실에서 과학자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의사는 흰색이 아닌 검은색 가운을 입고 환자를 치료하였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흘러 19세기 중반부터는 세균학의 발달로 의학과 공중보건도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세균에 관한 지식은 의사들로 하여금 많은 의료지식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립하게 만들었다. 차츰 의학도 과학의 영역으로 포함되기 시작하였고, 연구 활동의 결과로 많은 약들이 개발되어 환자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험실에서 입던 흰색의 가운을 의사들도 입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에 의하면 공식적으로 하얀색 가운(coat)을 입자고 주장한 사람은 20세기 초반에 뉴욕대학 (NYU’s Langone Medical Center)의 외과 의사였던 Dr. Mark Hochberg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주장에 많은 의사들이 동조하게 되고 20세기 중반에는 매우 일반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반대되는 ‘생명’과 ‘깨끗함’을 상징하는 ‘흰색’을 선택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또한 흰색에서 더러운 것은 바로 눈에 띄기 때문에 자주 세탁하게 되고 깨끗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덕분에 의복을 통한 세균 전파를 막아주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상징물이자 전통으로 여겨지는 흰색 긴 가운의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최근 이런 흐름이 진행되는 이유는 의사의 가운이 병원 내 감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지로 영국에서는 의사들에게 긴 하얀 가운을 입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긴 가운과 더불어 시계와 넥타이 그리고 긴 소매가 있는 옷을 착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는 위생과 관련하여 병원 내 감염을 줄이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한다. 최근 경상대학교병원과 다른 병원에서 의사들이 넥타이도 없이 짧은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종종 접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병원 감염을 줄이고자 하는 또 다른 노력의 모습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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