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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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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3  22: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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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5)

“여기도 괜찮습니다.”

“아이고, 안즉도 부석 앞은 불기 땜에 덥심더. 시언한 평상으로 가입시더.”

마당가에 설치된 아궁이 앞에서 일어 선 양지는 사장어른이 권하는 평상에 앉자마자 용건부터 서두를 꺼냈다.

“사실은 사장어른한테 의논드릴게 있어서, 내일모래면 병원에서 뵐 건데도 이렇게 집으로 찾아뵀습니다.”

“내같은 늙은이가 뭔 씌일 일이 있다꼬 의논이라니요. 그게 무인 말씸인지 통…….”

불티가 내려앉은 머리와 어깨를 털다말고 용재할머니의 얼굴에는 온갖 시름이 어른거린다. 호남의 말대로 우리 좋으려고 일 많은 늙은이의 굽은 등에다 짐 하나를 더 얹어놓으려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양지는 노인의 힘을 덜게 가전제품 같은 생필품이라도 성의를 많이 표하면 되지 않을까 나름대로 찾아놓은 대안을 떠올리며 용기를 냈다.

“그렇잖아도 일 많은 어른한테 참 어려운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아이고, 내같은 늙은이한테, 말씸만 들어도 참 감사합니더. 일이 많은 거야 전상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슥을 올바르게 못 낳아준 업장 때미내 당연히 받아야 될 수고라 안고 가는 것이고, 나라도 사지육신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 기나마 다행이다 그리 생각하고 안 삽니꺼. 그래 하실 말씸이 뭰지 해보이소. 그란 해도 성제 간들이 힘을 모아서 우리 며느리 살리낼라꼬 욕보는 거로 얼매나 감사하기 생각는디 내 힘으로 되는 일이모 얼매든지 하지요, 하고말고요.”

양지가 좀체 본론을 꺼내지 않자 노인네는 고부랑고부랑 몸을 움직여서 병원에 가져가서 물삼아 마시게 해놓은 거라면서 약재로 달인 물 한 대접을 떠서 차반에다 받쳐 들고 내밀었다. 고동색 맑은 액체를 들여다보고 있던 양지는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저 번에 보셨던 아이 있죠? 수연이라고, 제 조카 애.”

“아아, 봤지요. 아가 좀 약하기는 해도 참 똑똑하고 예삐데요. 갸가 와요?”

노인네는 수연이의 불편한 팔을 떠올렸는지 금방 미간을 모으면서 관심을 기울였다.

“사실은 걔가 여기서 같이 살고 싶다고 해서…. 어르신 일 많은 것은 모르고 어린애가 저희들끼리 어울려서 재미난 것만 알고 떼를 쓰네요.”

해놓고 보니, 천식으로 거친 노인의 숨결과 움직임이 전보다 더 느려진 것에 생각이 미쳤다.

자기 몸도 간수하기 힘 부칠 팔순 노인에게 참 면목 없는 부탁이다 싶어진 양지는 옆에 놓인 부채를 들어 개밥 그릇에 까맣게 붙어있는 파리를 쫒는 실없는 동작을 곁붙였다. 더 무슨 말이 나올 것인가 기다리던 노인이 그만하면 뜻을 알겠다는 듯이 선뜻 답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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