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김수환(형평문학선양사업회 사무국장)
마리 앙투아네트
김수환(형평문학선양사업회 사무국장)
  • 경남일보
  • 승인 2018.01.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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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1792년, 구제도의 모순과 재정파탄 등의 이유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혁명 재판은 루이 16세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 단두대로 참수형에 처했다. 그해 10월 초,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공개재판을 받는다. 민족주의에 깊이 물든 혁명기의 민중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오스트리아 여자였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는 반역자였다. 그녀는 혁명재판으로부터 사형판결을 받고 바로 다음 날인 10월 16일,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를 지켜본 프랑스 국민들은 “국민의 피를 게걸스럽게 먹던 저 거만한 오스트리아 여자의 머리가 마침내 떨어졌다” 며 열광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이 말은 프랑스대혁명의 단초가 된 유명한 말이다. 그녀의 반대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호화로운 파티와 무도회를 자주 열고, 의복 장신구, 보석 구입에 많은 비용을 지출했으며, 베르사유의 궁전 내부를 호화롭게 개조해 프랑스의 재정파탄을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했다. 혼외정사, 동성연애, 근친상간 등의 온갖 엽기적인 소문들이 왕비를 따라다녔고 그런 연유로 국민들은 왕비를 극단적으로 증오하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서, 오스트리아와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는 소작인의 밭으로 마차를 몰아 밭을 망치는 일을 거부한 유일한 왕비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였던 사람이었다. 저 ‘빵 대신 케이크’도 그녀가 한 말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장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등장하는 말이다. 그녀가 지출한 왕궁의 재정적 비용은 다른 왕정의 5%에 불과할 정도로 루이 16세와 왕비는 매우 검소했다.

지난주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인 엔도 슈사쿠의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번역 돼 출간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프랑스의 왕비로서 일단의 세력으로부터 갖은 모함과 선동에 의해 단두대에서 외롭고 참담하게 죽어야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진실이 점점 밝혀지는 추세라고 한다.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과, 선동된 군중들의 왜곡된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해야만 했던 그녀를 보면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아니면 교훈을 얻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건가, 세계사에 또 다른 마리 앙투아네트는 없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김수환(형평문학선양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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