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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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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7  22: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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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7)

양지는 아직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한 큰 스승을 만난 듯한 감동으로 용재할머니를 다시 바라보았다. 장애인 며느리를 자식으로 키우고 다스려서 건강한 후신을 몇 명이나 생산해 낸 그니의 지치지 않고 변함없는 정신력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장애인 며느리가 싱싱하고 단단한 새 생명을 잉태해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준 정신은 바로 모성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나 자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상식적인 자비나 사랑으로는 적확한 표현이 안 된다. 마른 삭정이처럼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저 늙은 몸은 거저 사람의 육신으로 보면 안 된다. 그런 정신은 지식이 풍부하다고, 기술이 특출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남루해지는 육체에 비해 더욱 고매해지는 인품이야말로 나이 들어서 갖추어야할 인간의 품격이리라. 나도 늙으면 저런 인성을 갖출 수 있을까, 양지는 문득 부러움에 젖었다.

“늙은 우들은 거저 때 조석이나 안 굶기고 옷이나 씻어 입히지 새끼들한테 늘 미안하더마 이모들이 이리 등걸등걸하게 힘이 돼 주니깨 한겨울에 핫이불 한 채 더 장만한 거 맨치로 얼매나 든든하고 좋은지, 애들도 좋아하지만 우리 두 늙은이도 둘이 앉으면 그런 말 합니다.”

이렇게 환영 받을 것 까지는 기대하지 못했던 터여서 양지는 호남이 옆에 있다면 등이라도 탁 치면서 ‘거 보라’고 의기양양하고 싶었다. 중요한 지점에는 언제나 기로가 있다. 선과 악, 낙관과 비관, 또는 명암도 있다. 절실하게 선각자나 멘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돌이켜보면 양지에게도 그런 기회나 만남이 통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판단과 편견에 빠져 기회를 간과해 버렸다는 것이 옳은 답이 될 것이다. 대수롭잖은 일에도 희망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경우가 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지친 나그네처럼 양지는 오늘 새로운 희망으로 가슴 설레는 맛을 누린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는 훗날 용재 네의 후견인 노릇도 떠맡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을 가졌다. 그와 아울러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대지’라는 소설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탄 소설가 펄 벅 여사에 대한 글을 떠올렸다.

늦가을 감나무가지에 까치밥으로 남겨져 있는 홍시와 가을 들녘에서 온 종일 밭일을 마친 소가 힘들어할까봐 달구지를 타지 않고 지게에다 볏단을 짊어진 농부가 소 곁에서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바로 그거,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한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녀요. 이것만으로도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하면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을 했다는 말이다. 펄 벅은 이어, 여러 번의 전란과 굶주림 때문에 피폐해진 민심 아래 묻혀버렸던 그 고상한 민심을 되돌려서 바로 세워야할 때가 바로 지금이며 그 역할의 일부분이나마 기여하고 싶어 미국인이지만 동양인을 사랑하고, 자신의 딸이 정신지체와 자폐증 환자이기에 더 마음 아픈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다 최초의 동양계 고아원을 세웠고 1964년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의 주선으로 전쟁 후 태어난 혼혈고아 2,000명을 위한 ’소사희망원‘을 세워서 1974년 까지 운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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