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8)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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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8)

그녀는 여자로서 이혼의 아픔을 딛고 정신지체나 자폐증의 고통을 받으며 이웃으로부터 외면 받고 사는 딸을 위하여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책을 썼고 자신의 딸을 위함이 어느덧 손길이 필요한 모든 아이들을 위한 크나큰 사랑으로 번졌다. 검게 뭉쳐있는 인생의 고통덩어리를 고약처럼 녹여서 활용한 커다란 교훈이다.

이런 기억은 수연을 품고부터 더 깊이 차곡차곡 양지의 뇌리 속에 각인되었다. 그때도 양지는 펄 벅에 못지않은 실천을 해서 내 나라 아이들만은 절대 외국입양을 보내지 않으리라 평생을 건 사업으로 고백했다가, 가랑잎 타고 태평양 건너겠다는 턱없는 호언장담이라는 현태의 빈축에 부딪혔다.

“내 어린 눈으로 볼 때, 키는 간짓대 모냥으로 쭈삣쭈삣하게 크고 몸에는 양돼지처럼 털이 부숭부숭한 인간들이 귀신처럼 뺑 둘러서서 내려다보면서 동물원 짐승 구경하듯이 키득키득 웃는 걸 상상이나 해봤어? 새파란 눈알이며 짐승다리같은 털북숭이 손을 쑥 내밀어 나를 잡으려는데 기함 안하고 배기겠나? 귀신인 저들끼리는 잘 통하는 말인데 내 귀에는 쏼라쏼라로 밖에 안 들리는 말이니 죽인다는 소린지 나중에 잡아먹자고 의논하는 소린지 무서움에 떨면서 오중도 싸고 설사도 하고, 그들이 아무리 선한 사람이었을 지라도 내게는 무섭고 무서운 짐승들 세계에 갇힌 거나 마찬가지 생각밖에 없었는데 올바르게 무슨 정신을 차리고 안정을 할 수 있었겠노.”

귀남에게 들은 고백은 더욱 양지의 결심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오늘은 또 한층 펄 벅과 같은 결심이 굳세어진다.

양지 네들이 검사해놓은 신장공여자 적합발표를 의사로부터 듣는 날이었다.



“헛 거참. 개똥도 약에 쓰일 때가 있다더마.”

의사의 결과발표가 끝나자 아버지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아버지 뿐 아니라 같이 있던 사람들 모두 충격적인 표정이 됐다. 용남의 존비속을 비롯하여 용재 조부모와 용재 네의 생활상에 감동받은 지인들까지 그 많은 참여자들이 검사를 받았으나 맞는 사람이 없자 분위기가 실망스러움으로 바뀔 즈음 귀남이 혼자 유일하게 적합판정이 나온 것이다.



“아이고, 형제 살리자고 뜻밖에도 나타난 수호신인가베.”

모두들 감동어린 한 마디씩을 던졌다. 양지는 귀남을 끌어안았다. 아,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귀남언니 역시 용남언니에게 필요한 존재이므로 아득히 먼 이국에서 이곳까지 다시 오게 된 것이다.

별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용남의 존재가 그의 아들인 용재로 인해 다가왔고 우주 밖의 떠돌이별이 될 뻔했던 귀남이 소원했던 형제자매의 연을 다시 확인하고 뭉치게 해준다니. 새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생존의 감동적인 의미가 곱새겨지는 날이 되었다. 정녕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불가해한 신들의 배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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