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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경남일보 기획] 천년 도시 진주의 향기<18>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예술제 개천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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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9  17: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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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 서제 중 태양광으로 불빛을 채화하는 모습.


하늘과 땅이 있는 곳에 꽃이 피는 것과 같이/인류의 역사가 있는 곳에 문화의 꽃이 피는 것은/아름다운 우주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예술은 문화의 또 한 겹 그윽한 꽃이요/예술이 없는 세기에는 향기와 참다운 인간 정신의 결실이 없는 것이다/한 때 예술이란 권력자를 위하여 궁정속의 비원에 피는 꽃인 줄만 알았으나 온전한 예술이란 사람의 목숨과 같이 영원히 자유롭고 대중적인 것이다/-단기 4282년(1949년) 제1회 창제 취지문 중-

◇진주, 진주인과 개천예술제

진주는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영예를 간직한 고을이지만 한편으론 진주성 2차 전투 시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고통을 겪은 도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굴곡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 한순간도 굴욕적이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신성한 도시이다.

이러한 진주를 있게 한 진주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한 김시민장군도 있고 잘 훈련된 병사들도 있으며 의병, 승병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 뼘의 땅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합된 마음을 보여줬던 민초, 즉 성민들이었다. 이를테면 진주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 이 땅을 지켜낸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 터전을 일구고 사는 진주인의 가슴엔 언제나 하늘의 뜻이 서린 뜨거운 피가 흐르고 맥동(脈動)친다.

화창하게 갠 어느 날 진주성 계사순의단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호국 영령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7만 민·관·군의 결의의 찬 충절의 함성이 들린다. 이는 곧 아지랑이로 바뀌어 하늘 위로 피어오르다가 어느새 촉석루 기둥사이를 휘감고 성벽을 넘어서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흘러간다.

이 신성한 곳에서 개천예술제가 탄생했다. 개천예술제는 이러한 진주인의 뜨거운 가슴과 호국 영령들의 혼이 빚어낸 보석 같은 대축제이다.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이 감응한다고 했다. 개천예술제의 서제(序祭)준비는 타 지역 축제와는 아주 달랐다. 1949년 제1회부터 46회까지 경기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신성한 불을 얻었고 제주 서귀포에서 바닷물을 떠왔으며 전국 열셋 시·도(市 道)의 흙을 모았다. 단군 이래 자주 국민의 영광과 환희를 예술 문화 축제로 펼치고 조국 단군께 제사를 지낸다.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는 뜻으로 단군기원 원년 음력 시월 초사흘, 개천절로 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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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어려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 한순간도 굴욕적이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신성한 도시이다. 이곳에서 개천예술제가 탄생했다. 개천예술제는 이러한 진주인의 뜨거운 가슴과 호국 영령들의 혼이 빚어낸 보석같은 존재이다.


◇전국 문화예술제의 효시

1949년(단기 4282년) 제1회 대회가 개최된 이래 거의 매년 빠짐없이 개최돼 온 전국 문화 예술제의 효시이자 성공적인 지역 문화예술 축제이다.

순수예술의 대중화와 민족예술의 창조 및 정립이라는 주제 설정 아래 해마다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꾀해왔으며, 제33회인 1983년에는 경남도종합예술제로 지정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개천예술제는 전통 예술 경연을 통해 지역의 예술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으며, 문화예술 도시로서 진주의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진주대첩이나 유등 행사 같은 지역 역사와의 결합을 통해 지역민들의 역사 인식과 단결을 강조하고 향토애를 고취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소중한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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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주필을 역임하면서 개천예술제를 창제한 파성 설창수


◇파성(巴城)이 창제…국가원수 참석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예술문화가 성하게 일어나 퍼지게 하자는 목적으로 1949년 정부수립으로 자주독립의 한 해가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개천절에 ‘영남예술제’를 열었다.

제1회 영남예술제는 경남일보 주필과 사장(1946년부터 주필 16년·사장10년)을 역임했던 파성 설창수(1916∼1998)선생의 창제로 문총진주특별지부가 주최해 1949년 10월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진행됐다. 이듬해인 1950년 한국전쟁과 1979년 10.26사건을 빼고 나면 해마다 그 맥을 이어온 우리나라 최고의, 또 최초의 지방예술제이다.

1959년 제10회부터 ‘개천예술제’로 고쳤으며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해산 후 1962년부터 1980년 제30회까지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진주지부 주최로 개최됐다.

1964년 12회 때 대통령이 개제식에 참석했다. 이는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참가한 예술제로 기록됐고 이후 1968년까지 다섯차례 계속됐다. 1974년 제25회 순수 예술의 대중화, 1975년 민족 예술의 창조와 정립으로 해마다 주제를 정해 새롭게 달라졌다.

1983년에는 경남도 종합예술제로 지정됐다. 특히 제49회인 1999년부터는 기획실을 운영해 개천예술제를 세계 속의 문화상품으로 발돋움시켰다.

2000년에는 규모면에서 개천예술제가 확대되고 도민들의 기대치와 욕구가 높아진다. 이때부터 부대행사로 진행되던 유등놀이가 정식으로 ‘제1회 남강 국제 등 축제’라는 이름으로 10월 3일부터 10일까지 펼쳐진다. 이는 남강유등축제의 모태가 된다.

 
   
▲ 계사순의단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신무


◇궁정의 비원에서 세상으로 나온 꽃

‘예술이란 권력자를 위하여 궁정속의 비원에 피는 꽃인 줄만 알았으나…’ 개천예술제 창제 취지문에도 나와 있듯이 개천예술제는 문화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개천예술제 예술 경연은 음악, 국악, 무용, 문학, 미술, 사진, 연극, 연예 8개 지부에서 전국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대회가 열리게 된다. 실제 당시 개천예술제의 각 부문에 입상하면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인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된다.

같은 취지로 일반인과 예술인이 ‘한데 어울림’의 장으로 거듭났다. 많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서로 격의 없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며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어울림마당은 개천예술제가 갖는 의미의 큰 축이다. 먹거리 문화와 시대의 풍속도이기도 한 장터문화는 대중예술이 있고 중간 중간에 전문 예술인들의 작품과 시연으로 예술의 장이 한층 더 고취되는 장소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중앙시장이나 자유·천전·공단시장과 기존 상권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진주인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개천예술마당’에 몰리면서 그동안 성업하던 재래시장은 파리 날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어쩌랴, 재래시장과 기존 상권 주인들도 헛헛한 마음으로 셔터를 내리고 얘기꽃 피는 개천장으로 향했으니…,

우리는 ‘내 집’, ‘내 동네’라 하지 않고 ‘우리’를 붙여 ‘우리 집’이거나 ‘우리 동네’라고 말한다.

너와 나, 삼이웃,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정신이 바로 어우러짐이다. 꾸밈없이 그대로 어우러져 사는 사람들을 다 같이 부르는 이름이 ‘우리’인 것이다.

니캉 내캉 나고 자라 정붙이고 어우러지며 살아온 땅, 같이 펴고 나누고 안아주는 것이 사람의 기본 도리라고 믿는, 그래서 정과 두레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 바로 진주이다.

◇성스러운 불은 호국영령을 기리는 행렬로 이어져

개천예술제 서제는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에서 성스러운 불로 시작한다. 성화는 진주성 특별무대에 제향되며 개천예술제의 정신을 살려 개천(開天)의 제단에 성화를 안치한다. 호국 영령들을 위한 제등 행렬, 호국 종각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타종의식이 열리고 서제 제향 후 남강하늘의 불꽃놀이로 절정을 이룬다.

서제 후 이튿날엔 본격적인 행사가 열린다. 산청 함양 하동 남해 사천 등 서부경남 사람들이 온 시가지에 총 집결한 가운데 가장행렬이 진행된다. 진주시내 초중고교 학생들 예술단원들이 수개월동안 준비한 기발하고도 해학 넘치는 소품을 앞장 세워 가장행렬을 펼친다.

특히 진주성 대첩의 영웅인 김시민 장군의 승전행차를 테마가 있는 행렬로 시민과 함께 한다.

역사문화행렬에는 의병 곽재우, 의병, 논개의 구국의 혼이 잠들어 잇는 충절의 고장을 표현하며, 진주의 역사성이 있는 행렬로 그중에는 진주의 3대 정신을 부각할 수 있는 만장이 참여함으로써 시민과 함게 하는 축제의 장을 펼친다.

◇미래를 여는 제 2의 창제문

창작뮤지컬 ‘촉석산성 아리아’는 진주대첩의 주인공 김시민 장군과 무명의 병사 의병 승병 진주성민의 충절을 다뤘다. 진주성 무대에서 공연해 진주 역사를 예술 공연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공연은 5년 연속 지역 대표 공연 예술제 공모에 선정돼 국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임진왜란 425주년을 맞아 진행된 ‘진주대첩 기념한마당’은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돼 승전한 진주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호국정신을 이어가가고자 함이었다.

개천예술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난 2004년 제54회때부터 변화를 꾀한다. 그 의미는 제 2의 창제취지문에 잘 반영이 잘돼 있다.

‘반세기를 뛰어넘은…, 광복의 깃발과 아우성과 감격의 어우러짐이라는 시대적 난장을 접을 때가 왔으며 우리는…, 이 제전이 통일의 제전, 겨레의 난장으로 거듭나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 갈 것을 다짐한다.<하략>


사진제공=한국예총진주지회

 

주강홍
주강홍
▶필자 약력
현 진주예총회장
현 진주문학상 운영위원장
전 진주 문인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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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어려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 한순간도 굴욕적이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신성한 도시이다. 이곳에서 개천예술제가 탄생했다. 개천예술제는 이러한 진주인의 뜨거운 가슴과 호국 영령들의 혼이 빚어낸 보석같은 존재이다. 사진은 개천예술제에서 문화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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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 문화예술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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