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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함께 온 조포 한 상자
이덕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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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0  15: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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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옛 시골에서는 한겨울이 되고 농사일이 없어져 한가해지면 낮에는 여자들은 길쌈을 하고 남자들은 짚을 이용한 생활도구, 가마니 멍석 등을 만들거나 새끼를 꼬았다. 농한기라고 불렀던 겨울철의 농촌은 나름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즐기기도 했던 정(情)의 시간이었다.

해는 짧고 밤은 긴 겨울, 영양이 풍부하지도 않고 열량도 낮은 밥 한 그릇으로 긴긴 밤을 넘기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밤참으로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거나 조포(두부의 사투리)를 만들어 맑은 물에 담가 얼지 않도록 정지에 두고 간수를 빼가며 먹었다. 어릴 때 집에서 만든 수제 조포는 콩의 연한 비린 맛과 간수의 바다 향이 묘하게 섞여 쉽게 그 맛이 친숙해지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변해 그런지 과거에 피하게 되던 쓴 맛이나 비린 맛조차도 별 거부감이 없어졌다.

연 전에 집사람과 같이 고향 가는 길에 옛 벗도 볼 겸 친구가 조합장을 하고 있는 시골의 농협 마트에 들렀다. 계산대 한 곁에서 열심히 조포를 만들고 있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하도 진지해 보여 말을 붙이고 있는데 친구가 특별히 개발한 해양 심층간수 두부라면서 시식을 권했다. 한 입 베어 먹어보니 오래 전에 잊혀 진 고향의 조포 바로 그 맛이었다. 농촌의 생산성을 높이고 조합원들의 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단다. 그런 옛 맛을 살려낸, 화학 응고제 두부가 아닌 전통 조포 한 상자가 우정과 함께 배달됐다. 고향의 농협에서 특별 개발한 조포 한 상자가 온 것이다. 비록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긴 했지만 가난했던 시절을 함께했던 고향 맛 두부는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어린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만들어 먹던, 지금은 사라져가는 농한기의 별식, 음식이라기보다 이웃 간에 나누던 따뜻한 정(情)과 마음들…, 간수의 염화마그네슘이 콩물의 단백질과 만나 응고되면서 조포가 만들어지는 화합의 오묘한 원리 등…

보수와 진보, 나이 많은 세대와 젊은이들, 이념과 아집이 갈등하고 충돌하면서 적폐청산이다 묵은 때 벗기기다 등으로 어느 때보다 혹독하게 느껴지는 겨울 저녁에 배달된 두부 한 상자는 따뜻하고 정겨운 우정 선물이자 마음의 위안이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서민들은 진영 논리에 빠진 편 가르기 식 정치보다 전혀 다른 두 성분이 만나 조포가 만들어지듯이 이 미움 저 갈등이 서로 봉합되어 그저 편안한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덕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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