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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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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0  22: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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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0)
“아무리 그래도 저한테 책임을 맡기시는 건 분명 무리예요. 어깨너머로 구경만 했지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데.”

“동생 성질에 부담 주는 일이 될까싶어 나도 첨에는 좀 망설였지만 해봐. 동생의 장래를 위해서도 분명 괜찮은 계기가 될 거야.”

“오빠가 저 생각해서 과찬하시면서 다른 사람 안 쓰고 저한테 맡기시는 거 알고 있는데 너무 부담돼서 그래요.”

“그래도 이대로 쳐져서 장장 세월을 허송할 수는 없잖나. 사람은 자기가 맡은 일에 따라서 다른 대접을 받는 법이더라고. 어쩌다 보면 호남이 동생이 쾌남이 동생한테 예전 같잖게 막 대하는 것 보면, 사람이 기가 꺾이면 저러는가 싶어서 나도 속으로 안됐어.”

순간 목이 칵 멜 정도로 양지는 가슴이 아팠다. 아니다, 아니다 부인하는 데도 타인들 눈에는 벌써 보이는 현실이어서 굳이 부인할 수도 없었다. 오빠가 건네주는 명함에는 양지를 기 세워주는 특별한 뜻이 잠재해 있음이다.

“오빠 말씀이 모두 옳아요 그렇지만 전…….”

“부담 갖지 말고 나 도와준다 셈치고 정식으로 맡아 줘. 이윤 남기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소신대로 한 번 해봐. 기업도 운영해본 사람이니 나는 동생의 능력을 믿어. 다시없을 기회라 여기고 막심을 써봐. 그럼 절로 오금이 펴지게 돼있어. 겉으로는 짐승들 밥이나 주고 똥이나 치우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찰 수도 있지만 마음먹고 하다보면 또 나름대로 보람이 있고 길도 열리게 될 끼라. 옛날 그 당차고 똘망똘망하던 눈 빛 좀 다시 보게 해주는 것도 좋은 일이고. 내 일간 핸드폰도 하나 사 줄거니깨 그리 알고 있으라고.”

“아유, 그것 까진 정말 필요없어요. 사무실 전화면 됐지.”



겉으로는 고사하고 있었지만 고종오빠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양지의 머릿속으로는 대규모 농장의 경영주가 되어있는 자신의 당당한 모습이 벌써 그려지고 있었다. 물론 다시없을 기회라는 말에 대한 자극도 재생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큰 힘이 됐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도 막상 어떻게 해볼 계기도 능력도 없어 시르죽은 듯이 세월이나 잡아먹고 있었다. 고종오빠가 던져주는 동아줄은 얼마나 든든하고 적극적인 구원의 활로인가.

전 같으면 마음의 서울에 대한 정돈하지 못한 정한 때문에 사양했을 자리였다. 보따리로 뭉쳐서 제쳐놓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듯이 후딱 지나쳤지만 풀어놓고 보면 참 복잡하고 아팠던 십 년, 긴 암흑의 터널이었다.

그 십년의 가르침에 따라 정착한 자리였다. 조그만 개미들이 만든 거대한 개미탑처럼 미미하다고 여겼으나 혈연들이 뭉쳐서 힘을 모으니 용남을 살릴 수 있는 길도 열리고 수연의 거처도 거뜬하게 잘 해결되었다. 흐린 장맛날 한 가운데 활짝 열리는 밝은 햇살을 맞이한 것 같다. 어린 초목 같은 삶의 의욕도 감실감실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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