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1)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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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1)

사료 창고 앞에서 고종오빠와 배합사료의 비율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데 손에 들꽃을 한 줌 뜯어 든 귀남이 해족해족 멋을 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오빠가 와 있는 것이 마치 뜻밖의 발견이라도 된다는 듯이 과장되게 눈을 크게 떠 보인 뒤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그 일은 어떻게 됐어요?”

인사말도 생략한 돌연한 물음에 대꾸할 답의 방향을 찾아 내지 못한 오빠는 당황한 듯이 굳은 표정으로 귀남을 바라보았다. 또 병증에 의한 돌발적인 전조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양지 역시 귀남의 다음 말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이 그새 다 잊었어? 하긴 도움도 안 되는 나 같은 거는 알 이유도 없단 말이지. 그렇지만 시치미 떼지 말고 말해 줘. 나만 따돌리고 쉬쉬하는 줄은 알고 있는데 나도 같은 집 사람아이가. 도움 안 되는 형제도 형제는 형제 아닌가. 용남이한테는 다 잘해 주면서 나한테는 너무 해.”

시비조로 비꼬는 것이 귀남의 일상 어투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분위기를 떨떠름하게 만드는 이런 경우는 누구든 원하지 않는다. 축우관계에 대한 전수 분위기는 이미 깨어져버린 듯하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양지가 귀남을 보고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면 앞뒤를 정해서 해야지 대뜸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듣고 무슨 답을 하겠어.”

“저 년 가시나 또 나선다. 내 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하는데 그것도 니한테 물어보고 해야 되나? 오빠 돈 많다니까 부탁 하나 할게요. 제발 나 좀 이 년 없는데서 살게 방 하나 따로 얻어줘요.”

귀남의 파르족족한 기색이 앵돌다 못해 오빠를 공격 대상자로 날카로워졌다.

“언니 왜 이래. 가자 약 먹고 한 숨 자야겠다. 오빠, 잠시만 다녀올게요.”

양지가 귀남의 팔을 끌어당기자 단숨에 팔을 뿌리치고 저항하면서 아예 오빠의 곁으로 다잡아서 달려간 귀남이 바짝 얼굴을 들이대다시피 한 채 막혔던 물이 터진 것처럼 말을 쏟아놓는다.



“호남이 그 가시나, 경찰서 갖다온 거. 지가 데리고 있는 젊은 놈 갖고 놀다가 잡히갔다 온 거 나도 다 알지. 내가 바보 천치가 축구등신이가. 일이 잘 처리됐으니 번질번질 나돌아 댕기는 줄도 알지만 그러면 안 되지. 벌금만 물고 나오면 뭐해. 또 그 짓 할 걸. 더러운 년, 놈이 탐나면 아주 재혼을 하지. 이마빡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를 물가에 찔레순 따먹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하는 짓이고.”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이 골자는 그거였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도 미처 못 한 채 멍하니 듣고 있었다. 양지는 말을 막으며 한쪽으로 끌어갈 태세를 취했지만 귀남은 또 힘껏 뿌리쳤다.

“경찰에서 오빠 얼굴 보고 풀어 줬다하지만 뒷구멍으로 약을 썼으니 나온 줄 내가 모를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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