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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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8.01.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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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시극 ‘순교자의 딸 유섬이’ 집필과 공연(7)
 


‘순교자의 딸 유섬이’ 넷째마당은 ‘유처녀의 성(城)’으로 마지막 마당이다. 유섬이가 양모에게 부탁하여 흙돌집(토굴)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25년을 지낸다는 이야기다. 흙돌집은 남쪽에 햇빛 들어오는 구멍 하나 내고 또 하나 구멍은 식판 들어올 정도의 구멍을 내어 사방과 하늘을 막아버리는 집이다. 그 속에 들어간 섬이는 기도하고 길쌈하는 일을 하면서 이른바 ‘백색 순교의 길’을 걷는다. 백색순교란 죽지 않고 살아서 순교의 삶에 버금가는 기도와 봉쇄수도 이상의 수도를 수행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섬이의 아버지 유항검이 전라도 지방 최초의 신자이고 1801년 신유박해때 순교했으므로 이 시기는 천주교 초기라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선교의 자유가 없었고 천주교 자체가 아직 체계를 갖추지 못하던 시기였으므로 수도회가 들어오지 않았던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추측해 보면 주인공 유섬이가 흙돌집에 들어가 기도생활을 한 것은 우리나라 천주교사상 최초의 갖추지 않은 수도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런데 흙돌집에서 사는 동안에 제일 큰 사건이 생긴다. 물론 이 부분은 필자의 상상의 산물이다. 거제부에는 천주교 불온서적 단속의 지시를 조정으로부터 받고는 새로 온 부사가 유섬이의 흙돌집을 부수고 압수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거제부에서는 분명히 유섬이가 기도서나 교리서를 몰래 들여놓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리라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형방의 인솔 아래 형리들이 다 동원되어 곡괭이와 삽 등 집을 부술 수 있는 연장들을 가지고 흙돌집에 당도한 것이다.

막 집 모서리부터 찍어내리며 부수기 시작할 때 내간리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형리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구동성으로 “안되오, 안되오. 절대로 안되오. 유섬이와 이 집은 우리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해왔소. 동네에 돌림병이 돌려고 할 때 그때마다 우리 동네만 피해서 갔고, 왜놈들이 소시락하게 침범하여 노략질을 할 때도 흙돌집의 영험인지 우리 동네를 그냥 지나쳐 갔소. 이런 흙돌집을 부순다고요? 차라리 우리 동네를 다 부수더라도 이 집은 안되오.” “옳소. 옳소. 아랫동네부터 차라리 부수고 올라 오소. 그런 뒤에 이 집을 부술려면 부수시오.” 박수소리 요란히 동조할 때 한참을 생각하던 형방이 “여러분. 진정하시오. 아무리 그래도 조정에서 내린 엄중한 지시를 어길 수는 없는 일이오. 국가가 내리는 경고는 국가 안위에 관한 것이오. 흙돌집은 부수고 다시 지으면 됩니다. 형리들 뭐하는 거요. 시작합시다.”

이때다. 동네 사람들 속에서 관망하고 있던 동네 훈장이 앞으로 썩 나서는 것이 아닌가. 훈장은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형방은 들으시오. 나는 서당의 학동들을 가르칠 때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성인재지미취(成人材之未就)하고’, 다른 하나는 ‘균풍속지부제(均風俗之不齊)하니라’가 그것이요. 인재로서 아직 성취되지 못한 것을 이루게 함이 그 첫째이고 사람살이의 풍속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것이 그 둘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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