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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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8.01.0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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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넘게 종을 만들어 온 유럽 최장수 기업 마리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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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른바 장수기업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많다. 100년 이상인 기업이 무려 5만개가 넘는다. 한국은행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은 일본이 3146개사로 압도적으로 많고 다음으로 독일이 837개사, 네덜란드는 222개사, 프랑스가 196개사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는 104개 사가 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0대 기업 가운데 이탈리아 기업이 무려 6개나 된다. 이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1000년도부터 종(bell)을 만들어 온 주물기업 마리넬리(Pontificia Fonderia Marinelli)이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마리넬리는 프랑스의 와인 생산업체인 샤또 드 굴렌느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두 번째 최장수 기업이다.

마리넬리는 이탈리아 아펜닌 산 중턱의 아뇨네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종을 주조하는 주물기업이다. 이 업체는 원래 베네치아의 수공 업체였으나 이 지역의 부자들이 요청하여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마리넬리에서 제작한 종들은 대부분 성당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현재 아뇨네 지역의 14개 성당에서 쓰고 있는 100여개의 종들이 모두 마리넬리의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수직선으로부터 약 1.4m 기울어져 있는 피사의 사탑은 두오모 성당의 종탑으로 건설된 것으로 그 탑에 설치된 7개의 스윙 벨은 모두 마리넬리에서 제작한 것이다. 1924년 로마 교황청의 종을 만든 이후 로마 카톨릭 교회 90% 이상이 마리넬리에서 제작한 종을 선호하고 있다. 마리넬리는 천년의 역사와 함께 종의 신화를 전승해오고 있다. 1961년에는 이탈리아 통일 100주년을 기념하는 종을 만들었고, 1992년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지 50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종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지난 2000년에는 성 베드로광장에 걸려있는 쥬빌리 종을 만들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헌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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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넬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개의 종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마리넬리 천년의 역사를 입증하는 천년의 종이다. 웅장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천년의 종 제작과정에 참여했던 장인들의 신에 대한 경외심과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 느껴져 시선을 사로잡는 신비스러운 종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몬테까시노 수도원에 있는 종이다. 이 종은 원래 1800년대에 마리넬리가 만든 것이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폭격을 당해 마리넬리가 다시 제작한 것이다. 몬테까시노 수도원은 성 베네딕트를 모시는 곳으로, 전쟁 당시 폭탄이 떨어졌음에도 성 베네딕트의 무덤이 무사하여 성스러움과 신비감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마리넬리는 그런 신령스러운 몬테까시노 수도원의 종을 다시 주조하는 일을 맡으면서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재기의 발판을 다지는 계기를 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마리넬리는 형 아르만도 마리넬리와 동생 파쿠알레 마리넬리가 12명의 직원들과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10살 터울의 두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공장을 드나들며 일을 익히고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가업을 이어온 것이다. 그들은 종 만드는 일이 놀이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일부였고 종을 만드는 기술이나 노하우 등은 놀이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소규모 기업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종 제작 방식을 통해 연간 50개 이상의 종을 만들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등에 수출하고 있다. 천년 역사의 종 명가의 노하우는 ‘종소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개발’에 있다. 종의 제작과정은 기본적인 형태를 만드는 일 외에도 외양의 디자인, 종소리에 이르기까지 미술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종합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천년 역사의 종 명가의 명맥을 잇기 위해 ‘삶에서 배우는 후계자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형인 아르만도의 장남은 나폴리의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동생과 함께 후계 경영수업에 임하고 있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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