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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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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4  2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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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2)

“내가 엘에이 살 때 옆집 사람하고 싸웠을 때도 그랬어. 나도 돈 주고 나왔거든. 돈 그거 좋은 거야. 산 사람도 죽은 목숨처럼 꼼짝 못하게 하고,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기 돈 아니가. 그렇지만 호남이는 그라모 안 돼. 지가 그래도 소위 양반 집 딸자식이 돼 갖고 그런 소행머리를 하고도 세상이 무서운 줄 모르고. 겁나는 게 없어 가지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벌 받는다. 암,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말이 어눌하고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것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귀남은 미워하던 사람에 대해 억눌려있던 감정을 폭로하는 것이다. 오빠가 손바닥에 들고 있던 사료용 등겨를 손가락 사이로 흘려버리며 고개를 저었다.

“호남이 동생한테 맺힌 게 많은 모양이네.”

“남자들하고 친하게 지내면 모두 그런 쪽으로 오해를 하니 큰일은 큰 일입니더.”

“오해가 지나치면 안 되는데, 큰일은 큰일이다.”

양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모래 속에 복병으로 감추어져 있는 위험스러운 암반처럼 평소에도 염려되었던 일이었다. 호남의 무례하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양지는 그런대로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호남이가 사과를 한 일도 귀남이는 꽁꽁 뭉쳐두었다 되씹곤 했다. 번연히 호남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면서도 언니라는 층하가 무시되는 일에 대한 귀남의 불만은 예민했다. 호남이 노골적으로 귀남을 멸시하는 어투를 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옷을 사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거나 사과 또한 시원시원하게 해버려서 별문제 없는 듯이 현실은 봉합됐다. 성격 다른 자매들끼리 복대길 때 생기는 거저 그런 실랑이로 넘기면서 덮어두고 지내는 참이지만 심각한 문제였다.

아주 분노어린 표정으로 숨결까지 씨근거리면서 귀남의 불만은 이어졌다.

“지가 좀 있다고 없는 사람 무시하고 까불면 천벌 받게 돼 있어. 하늘한테 땅한테 눈이 없는 줄 아나? 저 소들도 저 기둥도 저 풀이나 나무들도 다 눈 꼴치뜨서 지켜보고 있는 걸 알아야지.”

오빠 보기가 민망스러워진 양지는 귀남의 입을 막았다.

“언니야 정말!”

“뭐 이 가시나야, 너도 내가 한 성질 하는 거 알지? 삐딱해지면 어디든 달아나 버릴 거니까 수술 날까지 알아서 기어.”

참고 누르다 소리를 지르면 양지도 만만찮은 땡고함소리를 낸다. 양지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울화를 터뜨리고 말았다.

“가! 갈 테면 가. 생색 낼 일이 따로 있지. 언니가 세 살 먹는 어린애 아니잖아 제발, 제발, 좀!”

제 흥에 겨워있던 귀남이 뜻밖으로 큰 양지의 고함소리에 놀라 수북하게 쌓여있는 등겨 위로 다이빙 하듯이 털썩 몸을 던져서 엎어져 버렸다. 푹신한 등겨의 입자 속에 잠겨서 얼굴만 내 놓고 있던 귀남이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능청스럽게 중얼거렸다.

“아이 좋아. 엄마 품이 꼭 이럴 거다 그렇지 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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