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세계 최고라면서 콘텐츠는 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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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뉴스
  • 승인 2018.01.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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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 저자 박상익
신간서 후퇴한 번역문화 비판
2006년 책 ‘번역은 반역인가’에서 부실한 우리 번역문화를 날 세워 비판했던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번역 문제를 다시 화두로 삼은 신간 ‘번역청을 설립하라’(유유 펴냄)를 출간했다.

박 교수가 12년 만의 번역 책 발간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축소, 이를 두고 ‘학자들이 영어로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왜 예산을 들여 번역하느냐’고 말한 경제관료의 논리를 꺼내 들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12년 전보다 오히려 더 뒷걸음질 치고 있는 번역문화를 꼬집고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외래 문명을 자국어로 번역해 그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또 공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해마다 10월이며 우리 말글 예찬에 빠지지만, 정작 콘텐츠는 너무나 빈약하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만든 최고 성능의 도로(한글)를 놓고 해마다 때가 되면 개구리 합창하듯 자랑하는 데만 여념이 없었지, 그 도로에 수많은 자동차(콘텐츠)를 가득 채워 운행케 하지 못했다.”

메이지유신 직후부터 정부 내에 번역국을 두고 수많은 외래 문명을 자국어로 받아들여 온 ‘번역 왕국’ 일본의 풍경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그들이 19세기 말 번역한 고전 중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 아직도 많다. 보수주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의 명저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이 일본보다 128년 뒤인 2009년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됐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외국어 능력만큼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일본 밖을 나간 적도 없었던 일본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가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도 일본어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 성취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독서시장 규모가 매우 작은 상황에서 번역을 시장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된다면서 번역 전담 기구의 설립을 제안한다. 도로, 항만, 철도, 발전소, 통신 시설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으로 간주하자는 의견까지 제시한다. 온 시민이 한국어만으로도 세계의 수준 높은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지식의 민주화 운동이기도 하다.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 번역쯤은 대학원생들에게 맡기고 보는 교수 등 12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학계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책에 담겼다.

저자가 지난 8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번역청을 설립하라’ 제안에는 12일 현재 4천400명이 넘는 사람이 동참했다.

154쪽. 9000원.

연합뉴스



 
‘번역청을 설립하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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