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3)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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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3)

양지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눈이 독설과 광기를 보이던 좀 전의 모습은 간곳없이 어린애의 순진한 모습으로 바뀌어있다. 거보라는 듯이 오빠가 웃자 양지도 실소를 흘리며 오빠를 바라본다. 가장 이성적이고 줏대를 감잡아야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의식이 양지를 다시 지탱해준다. 차분한, 어쩌면 자포자기와 다름없는 침착한 음성으로 양지가 부탁 말을 했다.


“오빠, 버릇없고 성가셔도 좀 참아 주세요.”

무안한 양지의 부탁 말을 오빠도 천연한 음성으로 되받았다.

“정상이 아닌 사람 말을 갋아서 되겠나. 그래도 용남이하고 디엔에이가 맞아서 천만다행 아니가.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물은 다 저 나름의 가치와 존재대로 인정을 받아야 된다는 말씀도 있는 거라.”

“그래요 사실은 저도 속으로는 조마조마 해요. 저 변덕이 또 어떻게 나올지, 잘 구슬려서 수술대 위에만 오르게 하면 되는 데.”

“좀 두렵기는 하겄제. 그렇지만 설마, 믿어봐야지.”

하도 일상적으로 늘 있는 일이라서 양지와 오빠는 어린애처럼 일에 도움 안주는 귀남을 젖혀두고 오후 내내 계획된 일을 했다. 그 동안 자리를 떴던 귀남이 겨 묻은 얼굴을 씻은 마알간 얼굴로 냉장고에 있던 주스를 들고 왔다. 기특할 줄도 안다. 양지는 오빠와 긍정의 눈빛을 나누면서 귀남이 가져 온 음료를 마셨다. 그 참에 귀남은 다시 기회를 잡는다. 횡설수설이지만 얼음처럼 명징함이 느껴지는 음성이다.

“오빠도 호남이 그 가시나 봐주지 말아요. 아버지가 알면 다리몽댕이 부러질 것도 모르고 그게 까불어요. 오빠도 망신살 뻗치기 전에 그 년한테 잘해주면 안돼요. 그 가시나가 얼마나 잘난 척 하는지 모르지요? 여기 쾌남이도 있고 나도 있는데 지가 어른 노릇 다해요. 돈이 좀 있다고 그렇게 사람 기죽이면 돼요? 형제간에 잘나고 못난 게 어딨어요. 난 하루를 살아도 그 가시나 꼴 안보는 데서 살았음 소원이 없겠어요.”

혼자 이죽거리는 귀남의 소리를 귓결로 들으면서 두 사람은 다시 일손을 잡았다. 귀남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은 막지 않고 마음대로 감정의 표출을 하도록 그냥 두면 제풀에 입을 닫고 다른 데로 가버렸던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양지는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한 속마음을 부지런히 놀리는 손길로 잊어버리려 했다. 용남의 수술이 진행되느냐 중단 되느냐의 관건은 전적으로 귀남의 협조에 있다. 이에 따른 염려는 용재네가 가질 실망만은 아니다. 혈연으로 쌓아올린 개미탑의 붕괴가 몰고 올 낭패는 한두 가지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며칠 뒤, 결국 양지가 우려했던 설마는 뒤집히고 말았다. 왠지 다급하게 들리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들자마자 뜻밖에도 명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기 우짠 일이고? 귀남이가 여게 와 있는데. 병원에서 도망왔단다. 그게 뭔 말이냐?”

가슴이 철렁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양지는 재빨리 이성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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