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4)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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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4)
“거길 어떻게, 언니 지금 서울 있는 거 아입니꺼?”

“기철이 전화 받고 어제 왔지. 그런데 귀남이가 울타리 밑에서 벌벌 떨고 있다. 물에 빠진 개처럼 흠뻑 젖어갖고 덜덜 떠는데, 새벽 운동하러 나가다 내가 안 봤으면 큰일 날 뻔 했잖아.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지금도 이불 속에서 벌벌 떨고 있다.”

수술 날이 가까워 오자 귀남은 자주 무섭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어제는 자신에게 부어지는 호의와 다정한 눈길을 의식하며 용남의 손을 잡고 용맹스러운 하이파이브 동작을 해보이기도 했다. 양지는 우사의 가름 목을 짚은 채 절망의 한숨을 쉬었다. 우려스럽던 일이 기어코 일어난 것이다. 지금 시간 쯤 혼수상태 속에서 두 자매는 생명을 나누어갖는 수술대에 누워 있으리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물을 나르는 손길도 지극하게 움직이던 참이었다.

황당하게 소란스러웠을 병원의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렇지만 무서워서, 본인이 무서워서 도망을 쳤는데 누구를 나무랄 것인가.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뜨지 않으면 죽음이나 마찬가지인 마취를 시켜놓고 자신의 배를 가르고 감쪽같이 장기 하나를 잘라간다. 물론 의사의 진단을 거쳤지만 하나 남은 콩팥이 게 구실을 못하고 망가지는 경우 본인의 생명도 달리 방법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더럭 겁도 났을 것이다. 남이 아닌 형제니까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엉겁결에 응했을망정 막상 지명이 되자 두려움으로 흔들리던 눈빛이 그런 뜻 아니었나.

하도 놀라서 미처 말을 못하고 있는 양지의 귓속으로 생색내는 명자의 음성은 계속 박혀 들었다.

“무슨 귀신에 씌었는지 계속 무섭다고, 구석을 파고들고 나한테 엉겨 붙는데 뭐가 뭔지 나도 무서워, 어서 와서 어떻게 좀 해봐.”

누가 당골네의 딸 아니랄까봐 명자가 입에 올리는 ‘귀신’이라는 단어가 귀신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넝쿨이라도 잡은 것처럼 께름칙하게 양지의 신경을 긁는다. 곧 갈 테니까 어디 못 가게 좀 잘 보호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내 호남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야 큰일 났다. 내가 뭐라카더노. 귀남이 그게 사라졌단다. 도망, 도망을 갔다꼬! 수술 시간 안 놓칠라꼬 일찍 왔는데, 벌써 이 난리가 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양지는 자신의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심정을 호남에게 들키기 싫어 침착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통화를 했다.

“하는 수 있냐, 잘 설득해서 재수술 하는 수밖에.”

“언니는 놀라지도 않네.”

“좀 전에 명자언니한테서 전화 왔는데 거기 있단다.”

“머시라꼬?! 아이구매 얼척이 없네.”

“병원에 차 갖고 왔음 나 데리러 와 얼른. 다리가 떨려서 한 발자국도 못 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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