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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감과 박탈감
김수환(형평문학선양사업회사무국장)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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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8  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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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즐거운 일을 같이 한 사람보다 힘든 일을 같이 한 사람에게 더 깊은 친근감을 갖는다. 공동체의식은 기쁨이 아닌 고통에서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군대 동기와 군복무기간 내내 마치 형제 같이 지낸다. 같이 견뎌내야 했던 신병훈련소의 고된 훈련과 인정사정없는 엄격한 군기가 그들을 가깝게 만든다. 또한 고등학교 때의 친구는 초,중,대학의 친구보다 대체로 더 가깝게 지내는데, 그 또한 소년과 성인 사이에서 오는 여러 가지 혼란을 같이 겪은 때문일 것이다.

공감이라는 말의 어원은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라고 한다. 술지게미나 겨와 같은 조악한 음식을 먹으며 함께 고생하면서 집안을 일으킨 아내, 서로 깊이 공감하고 누구보다도 애틋하고 연민이 가는 조강지처가 그래서 더 특별한 존재다.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성공담보다는 자신의 실패와 좌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더 좋다. 사람들은 상대의 행복보다는 그가 겪은 시행착오와 고난에 대해 더 깊은 친밀감을 나타낸다.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그들에게 공동의 성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한다. 힘을 합해서 승리를 하고 나면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적다고 느끼기 십상이다. 재작년에 몰아쳤던 촛불집회를 자발적, 자연발생적이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몇몇의 단체와 질서 있는 일단의 흐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때의 요구대로 새 정권이 나서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고 하자, 일각에서는 현재의 비정규직에 근무하는 이들을 그대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게 아니라, 새롭게 공채시험 봐야 한다고 불만을 제기하였다. 애초의 요구는 일자리의 정규직화보다는 현재 비정규직자들의 정규직 전환이었을 테고, 많은 비정규직 근무자들이 촛불집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을 텐데 말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광풍이 불고 있다. 20대의 나이에 수십억을 벌었다는 등의 소문이 나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괜히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며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마음이 얼핏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들이 나보다 쉽게 수십억을 벌었다고 해서 지금의 내 소득이 그것 때문에 적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 생활이 갑자기 곤란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남의 행운이나 행복이 나의 불행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각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게 아닌지, 그것이 내 편, 남의 편을 가르고 있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수환(형평문학선양사업회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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