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6)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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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6)

“그건 언니 생각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언니네 못잖게 잘 살아. 남의 흉 사흘이고 개구리 올챙이 적 저를 잊어먹고 살잖아.”

흥, 저는 언제부터 부자로 살았다고. 호남의 혼자소리에 양지는 얼른 탁자 밑으로 호남의 발등을 쳤다. 명자는 말의 속뜻을 얼른 간파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호남은 아차 싶었던지 전혀 이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는 엉뚱한 제의를 던졌다.

“고속도로 연결하는데 들어가고 남은 땅, 나한테 다시 안 팔래 언니?”

“얘도 그 땅을 팔기는 왜 팔아. 너희도 고향 와서 같이 살자. 우리 기철이한테 말해서 집 지을 땅 좀 주라고 할 거니까 너들도 집 지어.”

“아니, 땅은 나도 많아. 집 지을 설계도도 벌써 건축사무소에 의뢰했고.”

“니들이 땅이 많다꼬?”

명자가 대뜸 호기심을 보이자 호남은 더 양양해졌다. 자신감에서 나온 대꾸도 시원하게 당찼다.

“우리라고 뭐 우리 인생 없어?”

“그건 그렇지. 너 돈 잘 번다는 소문은 들었다만. 아무튼 축하한다.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시킬 자식새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라도 많아야지.”

말을 꼭 그렇게 밖에 못하나 싶었지만 상식이 그 정도라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가진 자의 너그러운 여유일까. 찍자를 붙고 싶은 양지와 호남에 비해 봄바람이 지어내는 호수의 물결처럼 곱고 안정된 명자는 목소리조차 부드럽다. 가만히 앉았으려니 왠지 궁색스러워져 양지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물음을 던졌다.

“기철이는 또 선거에 나갈 거라지?”

“그럼, 한번 인정받고 맛들여놓으니까 안 되는 가봐. 나도 이제 애들하고 제 가족들같이 모여서 살면 좋겠구만 그 병이 한 번 들면 약도 없다네. 내가 비선 줄 알고 아예 눌러 앉힐 꿍심이라니까, 호호호 월급도 아예 상납하는 비서.”

흉보는 듯이 제 자랑한다고 말 나온 김에 반응을 하는 명자의 얼굴이 보람과 희열로 환하게 꽃을 피운다. 어느새 걱정 없이 마실 온 사람들과 주인이 마주 어울려서 노닥거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참 니들 온 김에 이것 보고 가라, 뵈이줄 게 있다.”

생각난 듯이 방으로 달려 간 명자가 귀한 물건처럼 보자기로 싼 함 하나를 무겁게 안고 나와 탁자 위에다 놓는데 숙원사업의 결과를 자랑하듯이 목소리도 한껏 들떴다.

“그게 뭔데?”

명자에게 호의적인 귀남이 대뜸 호기심을 드러내며 손을 뻗어 보퉁이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서둘러서 귀남의 손길을 밀어내고 제 앞으로 끌어들인 물건을 명자는 또 양지를 흘기면서 보자기개봉을 했다

“지지배, 태우지 말고 그때 그냥 넘겨주지, 거금 들었다.”

증보판으로 만든 족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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