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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45)<205>‘순교자의 딸 유섬이’ 집필과 공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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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9  04: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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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딸 유섬이’ 마지막 마당 ‘유처녀의 성’에서 중심 사건을 말하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거제부사의 명에 따라 형리들은 유처녀의 흙돌집을 부수고 그 속에 있는 천주학쟁이 불온문서를 찾아내려고 시도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이를 막고 있다. 요점을 말하면 유처녀 흙돌집이 이 동네에 생기고 난 뒤에 동네에 우환이 없어졌으니 절대 유섬이 집을 부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형방은 부사의 엄명을 받들기 위해 형리들에게 집행하라고 지시한다.

그때 동네 사람들 틈에 있던 동네 훈장이 나서서 ‘성균(成均)’ 이라는 글자의 뜻을 풀어 유섬이 집 보호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성은 ‘성인재지미취’이고 균은 ‘균풍속지부제’이라 뜻인즉 인재로서 아직 성취되지 못한 것을 이루게 함이 첫째이고, 사람살이의 풍속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것이 그 둘째입니다. 유처녀가 들이온 이래 우리 안골의 풍속이 더할 수 없이 가지런해졌습니다. 예의와 범절은 물론이요 생각하는 이들의 기품이 한 층 높아졌습니다. 훈장의 할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동네로서는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 하자, 동네 사람들은 ‘옳소’ ‘옳소’라 외치며 “민심은 천심이오”하고 합창했다.

그런 뒤 양모는 노환이 깊어져 몸져 누웠고 섬이는 이제 흙돌집을 나가 양모를 모셔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흙돌집을 부수어 달라고 요청했다. 시극은 이 흙돌집에서 나오는 장면에서 대단원을 이룬다. 흙돌집이 무너지자 깨끗한 백색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성큼 바깥으로 나온다. 머리도 백색,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이 신비의 자태를 보여준다. 어느결에 초시댁(양모댁) 마당은 동네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어느쪽에서부터일까 박수가 터져 나온다.

양모는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섬이 곁으로 가 섬이를 껴안는다. 섬이는 어머니를 꼭 껴안아 주며 “어머니 제가 어머니께 못할 짓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양모는 “용서가 무엇이냐. 이 어미는 우리 딸이 자랑스럽구나.” 동네 사람들은 “유처녀, 유처녀 수고 많았네요. 우리 곁으로 와 주어 고마워요. 유처녀님은 저희의 자존심입니다. 환영합니다.”

섬이는 겨우 가누며 사람들에게 절을 올리고 “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구해 주시고 칭찬까지 주시다니 몸 들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집에 들어가 살면서 여러 가지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흙돌집 밖에 여러분과 이웃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 곁으로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흙돌집이 되겠습니다. 살아 있는 흙돌집이 되겠습니다.” 이때 거제만 앞바다에 갈매기가 박수치는 소리이듯 힘주어 우는 소리 요란했다.

이 시극은 가톨릭 마산교구 기획으로 2016년 8월 31일 가톨릭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시극은 가톨릭마산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으로 출간되었고, 배포 등 모든 출간업무는 마산교구청 사무처에서 관장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자 마자 10월중에 가톨릭마산교구 평신도협의회가 주관하는 50주년 기념 강연회가 거제, 진주, 창원, 마산 등 4개지구에서 열렸다. 저자인 시인 강희근의 강연으로 거제에서는 고현성당, 진주에서는 신안성당, 창원에서는 반송성당, 마산에서는 양덕성당에서 각각 개최되었다. 물론 연제도 ‘순교자의 딸 유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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