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7)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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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67)

얼굴이 함박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난 명자는 자기네들이 등재된 곳을 찾아 책장을 넘기며 자랑스럽게 설명을 한다.

“요즘은 옛날하고 다르게 딸도 아들과 똑 같이 족보에 올리고 해달라는 대로 사진도 같이 넣어. 여기 봐. 여기, 우리 엄마, 나, 기철이도 있고 우리 가족들 모두 있지? 이렇게 되고 보니까 구닥다리 헌 책을 네가 태워버린 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긴 해.”

명자의 동작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던 호남이 냉소를 감추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언니 네가 한 일에 대해 초칠 생각은 없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을 언니가 안다면 언니가 말했듯이 거금 들여서 이런 책은 일부러 만들지 않았을 거야.”

“무슨 유행 말?”

“피이, 그러고 보니 언니도 구닥다리 다 됐네. 피붙이라고 믿을 수 있는 건 이종사촌하고 외손자 밖에 없단다.”

호남이 끼얹은 초를 맞은 명자의 얼굴빛이 해쓱해졌다. 얼른 이해 안 되는 멍한 표정으로 명자가 따졌다.

“빈말이라도 축하는 못해 줄망정 너 진짜 못됐다. 니가 무슨 심통을 부려도 나는 좋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꺼니까.”

허리를 쭉 편 의연한 자세로 때때거리는 명자를 응시하던 호남은 다시 일격을 날렸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보니 언니도 에나 많이 낡았네. 한 마디로 그깟 보책보다 서로 신뢰하고 아끼면서 사는 거 그게 더 확실한 보안이다 그런 말이지 뭐꼬.”



양지는 가늘게 시야를 좁힌 눈길로 호남을 건너다보았다. 호남에게서는 옛날의 명자가 얼비쳤다. 그러나 명자보다 키도 크고 살집도 넉넉한 것이 가능성도 월등해 보였다. 떼 지은 세 자매의 기세에 눌려 명자의 위세가 쳐지는 것도 보였다 인생의 변화는 파도의 너울과 흡사하다던가.

“이게 그냥! 못 알아듣기는 뭘 몰라. 나 아직 싱싱하다. 너 참말로 못됐다. 에나 물장사 티낸다. 어쩜 그렇게 막 됐어.”

“그래요. 막된 나도 살고 귀부인 언니도 사는 세상 그게 그래서 둥글둥글 둥글대요. 참 우리하고 디엔에이 검산가 그것도 하겠다고 했다죠? 우린 그깟 거 초월한지 오래 됐으니까 얼마든지 협조해 줄께요.”

전에 양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는지 명자는 흘끔 양지의 눈치를 살폈다. 호남의 거침없는 언행으로 수세에 몰린 느낌인지 약간 쑥스럽고 주눅이 든 표정이 된 명자가 털어놓았다.

“가오 빠지는 그런 짓은 이제 더 안 해도 된다꼬 우리 의원님이 딱 짤라서 결론을 내렸다.”

“그럼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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